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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앨프레드 마셜-수요ㆍ공급 법칙을 정립하다
장상환/경상대 교수 2009.11.04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은 영국의 경제학자로 신고전학파의 창시자이다. 케임브리지대 재학 중에 수학에 특출한 재능을 보여 1868년에 케임브리지대 정치경제학 담당 교수가 되었고 1877-1884년까지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교장 겸 정치경제학 교수로 일했다, 1884년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와서 1903년에 케임브리지대에 경제학과를 처음 창설했고, 1908년에 은퇴했다. 케인즈·피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제자를 양성, 신고전학파의 아버지로 불린다. 주요 저서로 『경제학원리』(1890), 『산업과 무역』(1919), 『화폐ㆍ신용 및 상업』(1923)이 있다. 『경제학원리』는 1920년에 8판이 나올 동안 당대 최고의 교과서였다.
 마셜이 살았던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시대(1837-1901)의 호황기로 진보와 낙관주의가 넘쳐났다.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여 세계대제국이 되었고, 연이은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자격이 확대되었고, 1871년에는 초등교육법 발표로 보통교육이 보급되었으며, 노동조합법 제정으로 노동조합 운동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산업혁명이 완성된 후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다. 1848년에 드높았던 불평도 잠잠해졌다. 1870년대에 불황이 닥쳤으나 노동자들의 생활이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한계혁명의 체계화
 이런 시대를 반영하여 마셜은 스미스와 리카도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관심주제였던 국부의 원천이나 분배문제를 떠나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그의 주된 기여는 한계혁명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왈라스, 제본스, 멩거 등이 발견한 한계효용법칙과 고전학파의 생산비이론을 종합하여 수요와 공급에 의한 균형가격 결정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수요와 공급을 종이를 자르는 가위의 양날에 비유하면서 수요와 공급 양자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가격의 변동에 수요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말하는 탄력성의 개념도 만들었다. 그는 부분 균형 분석, 즉 다른 것들을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하나의 변수가 다른 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또한 내부경제효과와 외부경제효과, 준지대,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 등의 경제적 개념도 발견했다.
 특히 마셜의 큰 공헌은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일정한 수량의 재화를 두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간인 단기와 시설의 추가로 생산량까지 변동하는 장기로 구분했다. 단기의 경우 상품의 시장가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품의 심리적 효용, 곧 수요이다. 그러나 장기에 가서는 생산비가 가격을 좌우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 그는 진화를 강조하고 수학적 방법의 사용을 조심했다. 연역법과 귀납법을 함께 사용하려고 했다. 그는 상식이 중요하다며 이론의 역할은 상식 뒤에 숨겨진 사물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보았다. 
 마셜은 빈곤을 비롯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겨냥했다. 부자들이 기사도를 발휘하여 국가가 빈곤이라는 불행을 추방할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랐다. 그러나 해결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경제학원리』의 서문 맨 앞에 “자연은 비약을 하지 않는다”는 자연과학의 금언을 써두었다. 그는 1885년 케임브리지대 교수 취임 첫 강의에서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cool head and warm heart)을 가지고 사회적 고뇌와 싸우는 제자를 양성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마셜의 학문적 태도는 수학식을 너무 사용하여 현학적이 된 오늘날의 경제학이 빈곤과 불황, 환경파괴 등 심각한 경제문제의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합리적 개인의 한계
 마셜은 계급이나 사회 대신 ‘개인’을 경제체제 작동의 주요 담당자로 세웠다. 개별 소비자와 개별 기업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사회적으로도 조화로운 균형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개인들의 합리적 행동이 사회 전체로는 독점, 불황, 실업, 전쟁 등 비합리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또 그는 정치경제학 대신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결과 경제학에서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내용이 사라지게 되었다.
마셜의 경제학은 1870년대 이후의 대불황, 세계 대전 등의 문제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경제현상이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제자였던 케인즈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라면서 이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