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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승선의 브랜드텔링동네 안경점의 온고지신 모스콧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20년 05월호


               

1800년대 후반 뉴욕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로 북적였다. 1865년에 막을 내린 남북전쟁으로 피폐해진 미국 전역은 재건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뉴욕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빠진 노동시장의 빈자리를 유럽 이민자들이 빠르게 채우고 있었다.
동유럽 출신의 하이만 모스콧(Hyman Moscot)은 1899년 미국의 재건과 더불어 산업화가 한창이던 때 뉴욕으로 이주했다. 고국에서 광학 관련 일을 했던 하이만은 1850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현대식 안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바빠진 뉴욕에 안경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 확신한 하이만은 안경 판매 사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민자에게 판매 장소를 구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하이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조그만 수레 하나를 구해 안경을 싣고 이민자로 북적이는 뉴욕 로어 이스트 지역 오차드 스트리트에서 안경 장사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귀에 다리를 걸치는 현대식 안경을 찾는 이가 많았고 그가 파는 안경을 신뢰하는 충성고객까지 생겼다. 하이만은 마침내 1915년 오차드 스트리트와 가까운 리빙턴 스트리트 94번지에 안경 가게를 열었다.
하이만은 자신이 가게를 열 수 있게 해준 동네 단골손님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응대했다. 1925년 아들 솔 모스콧과 함께 ‘솔 모스콧’이란 이름으로 다시 오차드 스트리트에 가게를 열었을 때도 모든 손님에게 똑같이 양질의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늘 당부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2대 경영자 솔 모스콧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했고 동네 안경점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창립자의 생각은 5대까지 이어졌고 고객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해법들은 노하우로 쌓여 2003년 ‘모스콧’이라는 이름의 88년 전통 아메리칸 빈티지 아이웨어 브랜드가 탄생한다.
모스콧은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시력 보정은 기본이고 착용하는 안경을 얼굴형에 맞게 세심하게 조정해주기도 했다. 또 자신의 얼굴에 맞아서 잘 쓰고 있던 안경 브랜드가 사라졌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고객을 위해 없어진 프레임을 복각(復刻)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배우 조니 뎁 안경으로도 유명한 ‘렘토쉬’로, 경제공황에 허덕이다 사라진 안경 브랜드 ‘타르트 옵티컬’의 ‘아넬’이라는 프레임을 복각해 만들었다. 모스콧은 사람들이 애용하던 빈티지 스타일의 렘토쉬에 고객들을 배려한 아이디어를 더했다. 렌즈의 가장 긴 너비 부분을 44㎜, 46㎜, 49㎜ 등의 다양한 크기로 제작해 같은 스타일이지만 각기 다른 얼굴형에 맞도록 제작한 것이다. 조니 뎁의 유명세 때문인지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찾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렘토쉬는 모스콧의 아이콘 제품이 됐다. 대를 이어 긴 시간 동안 동네 안경점으로서 고객의 관점으로 안경을 바라보던 모스콧이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프레임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의 콘셉트는 브랜드가 고객에게 전하는 말이다. 브랜드가 전하는 말에 깃든 의미로 사람들은 브랜드에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콘셉트는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하며 그것을 향하도록 하는 지향점이자 고객들이 원하는 핵심가치다. 모스콧은 할아버지 때부터 동네 안경점 주인장으로 얼굴에 맞는 스타일과 편안한 핏을 위한 혁신을 더해 빈티지 클래식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들, 예전의 것을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 모두가 찾는 브랜드가 됐다.

고지식함에 곁들인 위트
모스콧은 2014년 100주년을 기념해 창업자 하이만 모스콧이 사용했던 수레를 로고로 제작해 하나의 보증마크처럼 사용하고 있다. 모스콧 매장은 1915년 리빙턴 스트리트에 오픈한 가게의 모습을 계승하면서도 그중에서 오래돼 낡아 보이는 부분은 안경점 아저씨의 위트를 더해 새롭게 만들었다. 1950년대 오차드 모스콧 매장의 안경 전시를 위해 제작한 ‘모스콧 헤드’는 마네킹 머리에 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처음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는 평을 들은 모스콧 헤드는 현재 전 세계 매장에서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예전처럼 신문을 붙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인쇄된 단어를 조합하거나 이미지와 메시지를 교차 편집해서 전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눈 일러스트와 안경 프레임 모양의 조명 등 전통을 간직한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소품들을 매장의 시각적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1대부터 시작해 5대까지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은 가족경영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을 지키고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감각을 더해 트렌드에 맞도록 바꿨기 때문이다. 5대 경영자 잭 모스콧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는 모스콧 안경 프레임 디자인을 맡아 일하며 105년 동안 쌓인 고객 정보를 토대로 제품의 범주를 나눴다. 전통을 고수하는 프레임은 ‘Originals’, 전통에 현대적인 것을 가미한 ‘Spirit’, 가장 현대적으로 표현된 ‘Sun’ 등으로 묶인 제품들은 100여년의 세월 동안 모스콧을 찾은 고객 취향을 모두 품은 디자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브랜드가 하는 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제품 디자인에 표현되기도 하고 매장에 간판이나 소품 진열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제품을 판매하는 직원의 행동으로 브랜드를 판단하기도 한다. 고객은 하나가 아닌 모든 것의 조합으로 브랜드의 말을 해석하고 그 말이 자신에게 필요한 가치라면 주저 없이 브랜드를 선택한다. 브랜드의 콘셉트에 핵심가치가 깃들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브랜드는 간판 달고 문을 연 순간부터 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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