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상대로 강연할 때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건 언제일까요?” 얼굴에 곤혹스러운 반응이 나타난다. “처음으로 달에 간 건 1969년 아닌가요?” “네, 맞아요.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미국 동부 시간 기준으로 1969년 7월 20일 처음 달에 발자국을 남겼죠.”
이 대목에서 어떤 청중은 암스트롱이 달을 밟자마자 했던 유명한 말을 기억해 내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이쯤 되면 여기저기서 답변이 나온다. “2000년대 아닌가요?” “아니, 1990년대인가?” “최근에 중국에서 달에 다녀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인류가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건 언제일까? 정답은 1972년 12월 11일이다. 아폴로 17호의 우주인 유진 서넌(Eugene Cernan)과 해리슨 슈미트(Harrison Schmitt)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지질학자였던 슈미트는 달을 다녀온 최초이자 마지막 과학자다.
1972년 12월 14일 3박 4일간의 달탐사를 마무리한 아폴로 17호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고 나서 지난 53년간 인간 가운데 누구도 달을 밟은 적이 없다. 당시 달을 마지막으로 밟았던 서넌은 2017년 1월 16일 82세로 세상을 떴다. 슈미트는 2025년 현재 90세로 생존해 있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50년 넘게 달에 다녀온 인간이 없을까?
냉전의 또 다른 현장, 우주 개발
이 질문에 답하려면 1957년 10월 4일에 일어났던 역사적 이벤트를 떠올려야 한다. 이날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발사했다. 사람 몸무게만 한 공 모양의 인공위성 발사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특히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은 냉전체제에서 소련과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이었다.
그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였다. 소련이 눈엣가시이긴 했지만, 돈과 힘 두 가지 면에서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런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한 것이다. 미국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더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린 로켓은 다름 아닌 소련이 개발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량한 것이었다. 핵폭탄을 싣고 대륙을 건널 수 있는 미사일! 그러니까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던 셈이다. ‘봤지? 마음만 먹으면 로켓에 인공위성 대신 핵폭탄을 싣고 각도를 틀어서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수 있어!’
스푸트니크 1호에 놀란 미국은 재빨리 대응에 나선다. 우선 1958년 2월 소련과의 핵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각종 과학기술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인 고등연구계획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을 국방부 산하에 만든다(이 기관은 미국 본토가 핵 공격을 받은 뒤에도 생존자끼리 소통이 가능하도록 대안 통신망을 고안하는데, 그것이 인터넷의 시초다).
이어서 1958년 7월 28일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을 수행할 기관도 만든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미국항공우주국, NASA다. 그러니 NASA는 애초부터 순수한 과학 연구기관이라기보다는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 즉 냉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이런 맥락을 알아야 1969년 달 착륙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유사 이래 가장 감동적인 쇼”
1958년 NASA가 세워진 뒤의 상황은 어땠을까? 여전히 미국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서둘러 인류 최초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가는 바람에 또 한번 무참하게 체면을 구겨야 했다.
결국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1961년 5월 ‘달을 향하여(Destination Moon)’를 선언한다. 최초의 인공위성도 최초의 우주인도 소련에 빼앗겼으니, 최초의 달 탐사는 미국이 가져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1969년 암스트롱을 달로 보냈던 ‘아폴로 계획’은 어찌 보면 미국과 소련의 유치한 자존심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미국이 1960년대 ‘미국인’을 달로 보내려고 쏟아부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폴로 계획에 들어간 돈은 약 254억 달러, 지금 화폐 가치로 따져보면 약 2,419억 달러, 우리 돈으로 334조 원에 달한다. 심지어 1966년에는 미국 연방 예산의 약 4.4%를 아폴로 계획에 퍼부었다(미국 연방 예산에서 교육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 정도다).
이런 노력 끝에 암스트롱은 1969년 7월 20일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달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은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만 3년 동안 아폴로 11호부터 아폴로 17호까지 여섯 차례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나서 아폴로 계획을 폐지한다.
우선 정작 달에 사람을 보냈는데 들어간 노력에 비해서 별반 얻을 게 없었다. 1970년대 들어서 급격히 나빠진 미국의 경제 상황도 ‘돈 먹는 하마’ 같았던 달 탐사 계획을 폐지하는 데 영향을 줬다. 달에 발자국을 남겼던 열두 명 가운데 암스트롱을 포함한 아홉 명의 행적을 추적해 『문더스트(Moondust)』를 펴냈던 앤드루 스미스(Andrew Smith)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내게 떠오른 생각은 달 탐사 자체가 쇼, 유사 이래 가장 감동적인 쇼였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말대로 달 탐사는 한 편의 거대한 쇼였다. 또 “충분히 감동적인” 쇼였다. 하지만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따져봐야 한다. 1960년대 달 탐사 프로그램은 고용, 의료, 교육처럼 삶의 질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할 돈을 희생하면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쇼가 계속되기 위해서 미국은 다른 여러 기회를 놓쳤다.
알다시피 냉전이 끝나고 나서 달에 집착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중국이다. 2019년 1월 3일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했다. 2024년 6월에는 창어 6호가 달의 남극에 착륙해 암석 표본을 수집한 뒤 지구로 귀환했다. 언젠가는 기어이 ‘중국인’이 미국에 이어서 최초로 달 표면에 오성홍기를 꽂을 테다(2030년이 목표다).
여기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질문이 나온다. 한국도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한 달 탐사, 특히 ‘유인’ 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일에 뛰어드는 게 맞을까? 반세기 전에 흥행했던 거대한 쇼를 다시 재현한들 그만한 효과와 감동이 있을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태극기를 달에 꽂으려는 집착은 왠지 촌스럽다.
* 이 글을 마감하고 있던 8월 7일 아폴로 13호의 선장 제임스 러블(James Lovell)이 세상을 떴다.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에 달로 가다가 사고로 6일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톰 행크스가 러블을 연기했던 걸작 영화 <아폴로 13>(1995)은 이들의 구사일생 귀환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인 달 탐사에 대한 20세기 냉전기의 집착이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