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홍 피키 대표
“요즘 미국에서는 K뷰티뿐 아니라 한국 샴푸, 비누 등 K소비재 브랜드가 주류 소매 채널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소비재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글로벌 메인스트림 브랜드가 되는 것도 더는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글로벌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K뷰티의 숨은 경쟁력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다. K팝, K드라마의 팬이 된 보통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한국 화장품을 구해서 써본다. 그리고 SNS를 통해 체험기를 공유하며 입소문을 낸다. 이들은 K뷰티 중소 브랜드들이 글로벌 화장품 대기업들을 꺾고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이렇게 K뷰티를 사랑하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한국 화장품 회사와 체계적으로 연결해 그들을 홍보대사로 만들며 성장해 온 스타트업이 있다. 피키(Picky)의 이지홍 대표를 만났다.
전 세계 70만 크리에이터와 K뷰티 100개사 연결…
2025년 누적 매출 100억 원 이상 달성
2018년 설립돼 지난해 누적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한 피키는 전 세계 70만 명의 크리에이터를 약 100곳의 K뷰티 브랜드와 연결하고 있다. “한국의 중소 화장품 브랜드들, 대단합니다.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회사들이 용감하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택배를 보내 제품 홍보를 부탁하는 적극성은 대단한 거죠. 피키는 이 중소 브랜드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같이 성장하고자 했습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창업 배경이다.
크리에이터에게 무료로 제품을 보내서 써보게 하고 자연스럽게 사용 후기 콘텐츠를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 올리도록 하는 마케팅 기법을 ‘시딩(Seeding)’이라고 한다. 바로 피키가 하는 일이다.
“K뷰티 회사가 미국 크리에이터 500명에게 시딩을 하려 한다고 해보죠. 일일이 섭외하고 각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소를 확인하고 택배를 보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피키는 섭외와 제품 배송부터 콘텐츠 제작, 회수, 정산, 조회수 파악 등 모든 과정을 확인하고 리포트를 만들어줍니다.”
K뷰티의 열풍과 함께 피키도 쑥쑥 성장 중이다. 2020년 1억 원 수준이었던 매출도 매년 두 배 이상씩 성장했다. 특히 2024년에는 전년 대비 4배나 성장했으며 2025년 6월에는 누적 매출 100억 원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2024년부터 K뷰티 브랜드들이 틱톡 플랫폼을 본격 활용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피키가 틱톡을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서비스였습니다. 틱톡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었거든요. 그 덕분에 매출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피키는 틱톡 API를 직접 연동해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브랜드에 맞는 최적의 크리에이터를 매칭한다. 이런 매칭 시스템을 통해 팔로어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해당 브랜드를 홍보하는 단일 콘텐츠로 650만 뷰를 달성한 일도 있었다. 빅모델을 쓰지 않고도 그에 못지않은 효율을 낸 셈이다.
이런 성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이 대표가 사회생활 처음부터 창업을 시도했던 것도 아니다. 서울, 미국 실리콘밸리, 짐바브웨를 오가며 경험한 깨달음이 큰 역할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한국의 IT 대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구글로 이직하며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처음 글로벌시장의 엄청난 크기와 다국적 인재 풀의 파워를 느끼게 됐죠.”
하지만 미국보다 서울에서의 삶이 더 좋았던 이 대표는 2014년 서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세계적인 핀란드 모바일 게임 개발 회사인 슈퍼셀 서울 지사에 들어갔다. 이 회사가 클래시 오브 클랜이란 게임으로 전 세계를 석권하던 시기였다. “슈퍼셀에서의 경험을 통해 핀란드같이 작은 나라의 기업도 충분히 다국적인 글로벌 팀을 만들 수 있고 세계 1위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다국적 팀을 꾸려 글로벌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죠.”
2018년, 드디어 창업에 나섰다. 첫 번째로 주목했던 분야는 한국의 뛰어난 의료 인프라와 외국인들을 연결하는 것, 즉 의료관광 플랫폼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병원을 예약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외국인이 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뷰티 클리닉을 위해 한국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외국인의 한국 방문을 토대로 한 사업은 접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외국인 고객들이 확실히 한국 화장품을 선호한다는 수요는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K뷰티 팬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피키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글로벌시장에서 K뷰티의 성장은 미미했다. 너무 작은 시장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싹텄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K뷰티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대표가 2020년부터 2년간 외교관인 아내를 따라 짐바브웨에서 체류할 때의 일이다. “무역도 차단돼 있고 한국 슈퍼, 한국인 유통업자가 전혀 없는 짐바브웨에서 현지인이 K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봤습니다. 오로지 SNS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접하고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판매하는 사람까지 나온 거죠. 이런 분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해 K뷰티 마케터가 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K브랜드 관련 산업 성장세 꺾이지 않을 것…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에 만족 않고 도약 위해 투자 유치
서울에서 창업했지만 해외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로벌 팀이 결성됐다. 총 30명의 직원 중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이다. 이들이 각국의 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며 마케팅 캠페인을 설계한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외국인을 뽑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해외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상대국 언어가 자유로운 미국인 인턴을 채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회사의 업무 언어가 영어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한국에도 충분히 많은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일까지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다국적 인재 채용이 어렵지 않았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글로벌 팀을 꾸리고 영어로 일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외국인 인재 풀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외국인을 포함하면 더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도 이제는 영어를 꽤 잘합니다. 영문 문서 작성도 요즘에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훨씬 쉬워졌습니다.”
피키는 K뷰티 소셜 마케팅 플랫폼에 머물지 않고 더 큰 도약을 위해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비즈니스만으로도 충분히 흑자 운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K브랜드의 글로벌한 성장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K브랜드 관련 산업이 이제 피크 아니냐, 성장세가 꺾이지 않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다르게 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K뷰티뿐 아니라 한국 샴푸, 비누 등 K소비재 브랜드가 주류 소매 채널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소비재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글로벌 메인스트림 브랜드가 되는 것도 더는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피키는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미국에 물류센터도 만들고 결제 대행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K브랜드 유통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전 세계 한국 팬들을 K브랜드 홍보대사로 만들어주는 피키가 단순한 마케팅 플랫폼을 넘어 K브랜드 유통 유니콘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