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고전의 묘미는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가 쌓은 경험은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데, 우린 그걸 잘 알지 못하다가 고전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아, 내가 달라졌구나.’
어렸을 때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다. 어떨 때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짤막한 줄거리를 소개하고 싶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물질을 모아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바로 공포를 느낀다. 탄생한 ‘피조물’이 너무 추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은 인간 세계에서 거절을 계속 경험하면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삶을 파괴하겠다 다짐한다. 둘의 대결이 시작된다. 대결은 짐작과 다르게 흘러간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의외로 감정적이고, 뒤늦게 언어를 익힌 피조물은 예상외로 논리적이다.
다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한 놀라운 예언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만들었지만, 너무 뛰어난 능력 때문에 놀라고 있다. ‘나중에 인간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직업을 모두 빼앗아 갈 것’이라며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에게 이렇게 호통친다.
“네놈만큼이나 흉측하고 사악한 괴물을 다시는 만들어내지 않겠다.”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반항한다.
“나는 네놈이 불행한 나머지 햇살마저 증오스러울 지경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네놈은 내 창조주지만, 나는 네 주인이다. 순종하라!”
10년 후에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배경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 때문에 1816년 유럽은 ‘여름이 없는 해’로 기록됐다. 이상 기온 때문에 매일 비가 내렸고, 얼음이 얼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시인 바이런, 시인 퍼시 셸리, 메리 셸리, 바이런의 주치의 폴리도리는 야외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쓰기로 했다. 폴리도리는 뱀파이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바이런은 인류 멸망의 공포를 시로 썼고, 퍼시 셸리는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글로 적었고,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한 편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는 작가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메리 셸리는 알고 있는 것과 주워들은 것과 경험한 것과 상상한 것을 모두 이야기에 담았다. 자신을 낳고 열흘 뒤에 산욕열로 죽은 엄마를 생각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의 성장 배경을 구상했다. 폴리도리가 들려준 당대의 생리학, 전기 실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명 창조를 구상했다. 소외되는 여성 작가로서의 울분을 피조물의 분노에 담았다. 여름이 없는 그해가 없었더라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