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대개 화면 안에서 일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AI는 ‘몸’을 입고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오고 있다. 요즘 글로벌 기술업계의 가장 큰 화제로 떠오른 ‘피지컬 AI’ 이야기다.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생성형 AI 이후 AI 기술의 진정한 다음 단계로 주목받고 있다.
피지컬 AI란 AI가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물리적 장치 내부로 들어가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행동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단순히 정해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기존의 산업 로봇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로봇들은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스스로 배우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이다. 카메라로 보고(Vision), 사람의 말을 이해하며(Language), 실제로 움직이는(Action) 세 가지 능력을 한데 통합한 AI라고 생각하면 된다.
피지컬 AI는 로봇공학, AI, 센서 등 여러 기술이 오랫동안 융합되면서 정립된 개념이지만,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CES 2025 기조 연설이었다. 그는 “AI의 다음 프론티어는 피지컬 AI”라고 선언하며 세계의 시선을 이 분야로 끌었다.
생성형 AI가 가속화한 피지컬 AI 산업
피지컬 AI 분야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AI 로봇시장은 2020년 약 50억 달러에서 2025년 약 225억 달러로 무려 350%까지 성장했고, 연평균 성장률 23.3%를 유지하면서 2030년에는 약 643억 달러(약 85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10년 사이에 시장이 10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빠른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핵심은 최근 폭발적으로 발전한 생성형 AI에 있다. 기존에는 로봇을 움직이게 하려면 고급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수백 줄의 코드를 직접 작성해야 했다. 요즘은 개념만 떠올리면 AI가 코드를 스스로 작성해 로봇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로봇에게 “이렇게 해”라고 말로 지시하면 바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개발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로봇을 만드는 일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쉬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 수집도 혁신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로봇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가상현실(VR) 헤드셋과 장갑을 착용하고 물건을 잡는 등의 동작을 취하면, AI가 그 행동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메타와 조지아공과대 연구팀이 개발한 프레임워크 역시 같은 원리다. 스마트글래스를 착용한 로봇팔이 직접 움직이면서 수집한 영상 데이터를 학습하며 훈련한다. 여기에 가상 세계에서의 학습까지 가능해졌다. 엔비디아의 ‘코스모스’ 플랫폼은 물리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 가상 공간에서 AI 학습용 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성한다. 실제 환경에 투입하기 전에 가상 세계에서 수천 번의 리허설을 거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1월, CES 2026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 산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56개의 독립 회전 관절을 가지고 -20°C부터 40°C 사이의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작동하며, 구글 딥마인드의 AI 기술과 결합해 복잡한 명령을 이해하고 최적의 작업 경로를 스스로 생성한다. CES 2026 최고 로봇상을 수상한 아틀라스는 2028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실제 공정에 투입될 예정이다.
아틀라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BMW 공장에서는 피규어 AI의 로봇 피규어 02를 11개월간 실제 생산 라인에 투입해 3만 대의 자동차 제조에 기여했고, 현재 차세대 모델인 피규어 03 체제로 전환했다. 아마존은 2025년 중반 전 세계 물류 창고에 백만 대의 로봇을 배치해 세계 최대 모바일 로봇 운영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중국도 이 시장에 빠르게 진출해 CES 2026에서 수십 종에 달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더는 피지컬 AI가 실험실 속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각자 다르게 그리는 피지컬 AI 시대 청사진
기업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피지컬 AI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의 강점을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만들어 자율주행에 쓰는 컴퓨터와 신경망 기술을 그대로 로봇에 적용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자사 내부에서 통합하는 폐쇄형 전략을 추진 중이다. 반면 로봇을 직접 만들지 않는 엔비디아는 다른 회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범용 AI 모델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휴머노이드든 서비스 로봇이든 모든 종류의 로봇에서 사용되는 표준 ‘두뇌’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완제품을 만드는 것과 그 핵심 기술을 공급하는 것, 피지컬 AI 생태계에서 두 가지 모두 강력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8월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피지컬 AI 1등 국가’를 목표로, 로봇·자동차·반도체 등 7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뒤이어 9월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피지컬 AI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산학연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CES 2026 당시, 중국산 로봇의 물량 공세 속에서도 한국은 ‘제조 AX(M.AX) 얼라이언스’를 통해 산업통상부 주도로 로봇 플랫폼 기업인 에이로봇·로브로스·로보티즈 등과 휴머노이드 AI 개발사인 투모로 로보틱스, 로봇 부품사인 에스비비테크 등 국내 기업 10곳이 공동관을 운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준비돼 있는가?
피지컬 AI 시대의 진짜 핵심은 ‘데이터’다. 로봇산업의 승부는 하드웨어가 아닌 데이터에서 결정된다. 누가 먼저 대규모의 산업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다. 제조 기반이 탄탄한 우리로서는 이미 보유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중요하다. 완제품 경쟁보다는 핵심 부품 공급자의 포지셔닝이 국내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센서, 전동기 등 로봇의 몸과 두뇌를 이루는 ‘조용한’ 역할 중에서 우리가 가진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글로벌 생태계에 공급하는 것, 이것이 피지컬 AI 시대 한국의 실질적인 경쟁 무기일 것이다.
피지컬 AI는 단순히 기업과 산업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는 제조 공장뿐만 아니라 의료, 농업, 물류 등 우리 일상과 더 가까운 영역에서 로봇이 차차 등장할 것이다. 알파고 이후 AI와 협업한 바둑기사가 더 강해졌듯이 로봇과 어떻게 공존하고 협업할지를 준비하는 기업과 개인이 피지컬 AI 시대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술이 우리 삶에 들어오는 속도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준비는 지금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