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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작은 냉장고를 부탁해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6년 03월호

간혹 강연하면서 냉장고를 소재로 농담할 때가 있다. 

“여러분 댁의 냉동고를 털면 아마 고등학생 한 반 전체를 먹일 수 있을 겁니다. 까만 봉다리, 하얀 봉다리가 가득하죠. 고기는 무슨 육종인지 알 수 없어서 녹여본 후에야 구별이 될 겁니다.”

폭소가 터진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공감한다는 뜻이다. 냉장고는 개발된 후 계속 커졌다. 이제는 탱크만 한 양문형 냉장고도 작게 느껴져서인지 별도로 ‘서브’ 냉동고며 냉장고를 사는 게 유행이다. 집에 냉장고가 서너 대씩 되는 집이 적지 않다. 김치냉장고는 계산에서 빼고도 말이다. 

난 약간 집착증이 생겼는데 집 냉장고 탓이 크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먹어치워야 할 게 너무도 많다. 다 큰 애는 집에서 밥도 거의 먹지 않는 데다가 우리 부부는 늙어서 소화력이 떨어진 탓이다. 사람이 하루에 다섯 끼를 먹을 수는 없다. 음식이 상해서 버리는 날이면 아까워서 잠도 안 온다. 

음식이 냉동고에 있다고 보존 기한이 천년만년인 건 아니다. 오래되면 스펀지처럼 푸석해진다. 음식을 안 사고 요리도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게 꼭 그렇지 않다. 내가 쓰고 싶은 만큼만 사기가 힘들다. 코로나19 무렵부터 온라인으로 사는 게 많다 보니 더 그렇다. 200, 300g씩도 살 수 있지만 비싸다. 둘둘 말아 냉동실과 냉장실에 넣어둔다. 언젠가 요리조리 요리해 먹어야지 하고 요량한다. 그러다 잊어먹고 새 재료를 산다. 그 전에 넣어둔 건 썩거나 상태가 나빠진다. 진물이 줄줄 흐르는 콩나물 한 줌, 껍질이 노송처럼 변해가는 사과를 냉장실 구석에서 발견하는 순간 기가 탁 막힌다. 그게 하루 종일 머리에 남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쌀 한 톨, 밥 한 술 남기지 말라고 배우고 실천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일까. 

우리 집에 냉장고가 들어온 건 열여섯 살 때였다. 전세 400만 원짜리 집으로 이사가면서 처음 내 방을 갖게 된 그 무렵이었다. 냉장고가 없던 때에는 나무 찬장과 아이스박스로 버텼더랬다. 처음 산 냉장고가 너무도 신기했다. 작은 냉동실에 별걸 다 얼려보기도 했다. 이때 콜라를 얼리면 맛이 없다는 걸 알았다(가스가 날아간 콜라라니). 냉동실에 고기를 저장할 리 없었다. 사서 바로 먹기에도 모자랐다.

언젠가부터 냉동실에 고기가 들어가 있기 시작했다. ‘투뿔등심’은 아니었지만. 1980년대의 풍요가 도래한 것이었다. 닭고기 말고 돼지고기나마 붉은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됐다. 점차 냉장고도 커졌다. 1990년대 최고 배우였던 최진실이 신혼집 혼수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광고한 냉장고만 하더라도 양문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금세 대세가 됐다. 커지고 세져라. 광(pantry)처럼 커진 냉장고 안에서 무언가가 썩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굶고 있을 때 말이다. 

냉장고 크기와 인류의 건강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대체로 반비례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미국에선 냉동식품의 번성이 국가적 문제로 비화한 비만과 연계돼 있다고 인식했다. 

옛 흑백 미국영화를 보면 모두들 군살이 없다. 미국인들이 비대해진 건 햄버거 때문이 아니다. 냉장고의 크기 탓인 듯하다. 그렇다고 그 크기를 줄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언젠가부터 작은 건 잘 팔지도 않는다. 

사실 냉장고는 본디 인류의 건강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는 효자다. 미워할 수 없는. 그렇다면 보조 냉장고를 더 사지 않고 갖고 있는 냉장고를 효율적으로 쓰는 게 맞겠다. ‘냉장고 반만 채우기 운동’ 같은 건 어떨까. 그렇게 해도 내 집착증과 염려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아아, 일주일 전에 만들어놓은 짜장이 언제까지 버틸까. 잘라서 따로 냉장고에 넣은 김장 김치는 하루이틀이면 맛이 나빠지는데 그걸로 찌개를 끓여야 하나? 아직 사흘 전 된장찌개가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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