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을 보며 문득 금메달 시가가 궁금해졌다. 전남 함평군에서 2008년 28억 원에 제작한 황금박쥐상의 가치가 400억 원에 육박한다는데, 손바닥만 한 금메달도 큰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CNN은 밀라노 올림픽 금메달 가격을 2,300~2,400달러 사이로 추정하며 ‘역사상 가장 비싼 올림픽 메달’이라고 평했다. 2024 파리 올림픽(약 900달러) 이후 1년 반 만에 2.5배 오른 셈이다. 사실 금메달은 속을 은으로 채우고 겉에 금을 입혀 제작돼 금 함량은 생각보다 적다. 그럼에도 은 가격 역시 크게 올라 은메달 가격도 파리 올림픽보다 두 배 이상 오른 1,400달러로 추정된다.
불확실성 커질 때마다 상승했던 금값
금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랜 기간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었다. 부피가 작고 희귀해 어느 문화권에서나 귀하게 여겨졌던 까닭이다. 국가(중앙은행)가 담보하는 통화 체계가 자리 잡은 20세기 이후 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쟁이나 경제 위기처럼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금값이 상승했다. 닷컴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 같은 금·은 변동폭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2년 사이 금값은 약 2.5배, 은값은 3~4배로 뛰었다. 지난 1월 29일에는 금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500달러를, 은 역시 같은 달 26일 100달러 선을 돌파했다. 배경에는 ‘탈화폐 거래(debasement trade)’ 확산이 있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비해 대체 자산을 찾는 움직임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재정 적자로 통화량이 늘고 인플레이션으로 통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해 국제 질서 재편으로 ‘달러 불신’이 커진 것도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개입 가능성이나 그린란드 합병 언급 등 지정학적 불안이 겹치며 귀금속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매수에 앞서 투자 목적을 명확히 해야
이런 이유로 각국 중앙은행과 개인 투자자들은 대체 투자처인 금을 적극 사들이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의 연간 금 매입량은 2010~2021년 평균 473톤에서 2022~2024년 평균 1천 톤 이상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863톤을 기록했다. 금 ETF에 돈이 몰리면서 운용사들도 실물 금 확보에 나섰다. 전 세계 금 ETF가 보유한 금은 약 3,932톤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이며, 한국은행 보유량의 약 38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은은 여기에 산업재 성격까지 더해진다. 열과 전기 전도성이 높아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에 핵심 소재로 쓰인다. AI산업의 성장으로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수년째 부족한 상황이라 ‘가난한 자의 금’, ‘악마의 금속’이라는 별명에도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상승세를 이어가던 금·은 가격은 지난 1월 30일 하루 만에 각각 약 10%, 27% 폭락했다. 통화 긴축 성향이 강한 케빈 워시가 차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날이었다. ‘강달러’가 돌아오면 금·은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 퍼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이 저점 매수 기회인지 고민하겠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단순히 “금이 오른다”, “은은 더 빠르게 오른다더라”는 기대만으로 접근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자산 배분이나 통화 가치 하락에 대비한 가치 저장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