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자본시장에는 여러 변수가 겹쳐 있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방향, 공급망과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동시에 작용 중이다. 이런 환경에서 홍콩 자본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에 연동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도록 관리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통화 변동성이 작다. 여기에 홍콩에 상장된 기업 중에는 중국 본토 대표기업이 많아 홍콩시장은 안정성과 중국시장 접근성을 모두 갖춘 곳으로 평가된다.
올 1분기 홍콩 GDP는 전년 대비 5.9% 상승했다. 최근의 이러한 경기 반등을 단기적인 흐름으로만 보기 어렵다. 중국의 가계자산 구조 변화, 정부의 중장기 정책 방향, 아시아 내 글로벌 자금의 재배치가 맞물리면서 홍콩의 역할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중국 양방향 연결로 확장된 홍콩 자본시장,
중국 가계자산 조정 흐름과 정부의 홍콩 위상 격상 결과
중국 가계자산은 오랜 기간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중국경제 업데이트(China Economic Update)」에 따르면 부동산은 중국 가계자산의 약 60%를 차지한다. 금융자산 역시 대부분 예금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의 조정이 길어지고 금리 환경도 바뀌면서 자산을 한곳에 묶어두는 대신 주식, 펀드, 보험, 연금 등으로 나누려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홍콩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홍콩은 주로 글로벌 자본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해외 투자자가 중국 기업과 중국시장에 접근할 때 홍콩을 활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본토 자금이 홍콩을 통해 해외 자산과 글로벌 금융 상품에 접근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는 홍콩 자본시장이 단순한 중개에서 양방향 연결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는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홍콩은 과거 외국 자본의 중국 진입 관문이었지만, 이제는 중국 가계가 막대한 저축을 해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통제된 투자처(controlled outlet)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중장기 정책 방향과도 맞물려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는 홍콩의 위상을 ‘슈퍼 커넥터(super connector)’에서 ‘슈퍼 가치창출자(super value-adder)’로 격상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홍콩을 중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본이 모이고 기업이 상장하고 투자자가 자산을 배분하며 중국과 해외시장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홍콩 재정부도 이에 발맞춰 금융이 실물경제와 혁신산업을 이끄는 ‘파이낸스플러스(Finance+)’ 모델을 제시했다. 홍콩증권거래소(HKEX)가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등 해외 거래소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UAE 등 아시아·중동 기업의 상장을 적극 유치하는 흐름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은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창구이자 아시아 신흥시장 기업들이 글로벌 자금을 만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한국과의 연계도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KRX)와 홍콩증권거래소는 공동 브랜드 지수인 ‘HKEX KRX 반도체 지수’를 공개했다. 이 지수는 한국거래소의 반도체 대표기업 15개와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반도체 관련 기업 15개 등 총 30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이를 기초로 한 ETF의 개발 및 홍콩 상장도 추진 중이다. 글로벌 투자자가 하나의 상품을 통해 한국과 홍콩의 반도체산업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첫 가시적 협력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해 IPO시장 세계 1위, 남·북향 자금도 역대급…
한국도 성장산업에 장기자금 유입할 제도 마련해야
홍콩의 변화는 실제 자금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홍콩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본토 투자자가 홍콩 증시에 투자하는 ‘남향(南向)’ 자금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211억 홍콩달러(약 155억 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연간 순매수 누적 금액은 약 1조3,898억 홍콩달러(약 1,78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본토 자금이 홍콩에 상장된 중국 대표기업과 ETF에 유입되면서 홍콩시장이 자산 재조정 수요를 흡수하는 주요 통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투자자들이 자산을 부동산과 예금 중심에서 주식과 ETF 등으로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홍콩시장이 주요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해외 투자자가 홍콩 증시를 거쳐 중국에 투자하는 ‘북향(北向)’ 자금의 지난해 일평균 거래대금 역시 2,124억 위안(약 297억 달러)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자금의 중국 내수·신산업 노출이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향은 ‘중국 자금의 해외자산 분산 통로’, 북향은 ‘글로벌 자금의 중국시장 진입 통로’다. 양방향 자금이 동시에 기록적 규모로 흡수되는 구조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홍콩의 역할 변화는 기업공개(IPO)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은 119건의 신규 상장을 통해 374억 달러를 조달하며 글로벌 IPO 조달액 1위로 시장에 복귀했다.
지난해는 중국 본토 대형 기업들의 홍콩 상장이 이어지면서 중국 기업의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이 본격화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약 52억 달러 규모로 글로벌 최대 IPO를 진행한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기업 CATL을 포함해 지난해 상반기 세계 10대 IPO 중 4건을 홍콩이 차지했다.
올 1분기에는 흐름이 한층 가팔라졌다. 홍콩은 40개 기업의 IPO를 통해 1,099억 홍콩달러를 조달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489% 증가한 규모로 2021년 2분기 이후 분기 최고치인 동시에 같은 분기 나스닥·뉴욕증권거래소를 상회하는 글로벌 1위 실적이다.
이처럼 홍콩은 중국과 세계 사이에서 자본이 오가는 완충 지대이자 연결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은 이를 국내 자본시장을 일거에 전면 개방하기보다 홍콩이라는 역외 허브에 ‘통제된 출구’를 두고 통로를 단계적으로 넓혀 가는 방식이라 설명한다.
홍콩 자본시장의 변화는 한 도시의 금융시장이 회복하는 것을 넘어 중국의 가계자산 구조 변화와 글로벌 자금 흐름의 재편이 함께 반영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의 정책 방향과 글로벌 투자자의 아시아시장 재평가가 맞물리면서 홍콩의 역할 변화가 더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홍콩 모델은 체제, 통화, 시장 구조, 지리적 여건이 한국과 다르다. 따라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자금 흐름을 성장산업과 글로벌 자산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된 자금을 어떻게 장기 투자로 유도할 것인지, 국내 자본시장과 해외 금융허브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는 한국에도 중요한 과제다.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역외 금융허브는 교차상장, ETF, 채권 협력을 통해 해외 자금을 자국 산업과 연결해 왔다. 동시에 자국 투자자에게는 해외 자산으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 왔다. 한국도 자본시장의 깊이를 키우고 성장산업에 장기자금이 흘러가도록 하는 제도적 연결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홍콩은 지금 단순한 금융 중개 도시를 넘어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를 관찰하는 것은 한국이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자본시장 구조와 중장기 전략을 점검하는 데 유용한 비교 기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