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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무역 자유화와 식량안보라는 이중 과제 속 우리의 농정 전략은 어디에
유원상 주OECD대표부 참사관 2026년 03월호

1961년 OECD 설립과 함께 출범한 농업위원회(CoAG; Committee for Agriculture)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직면한 식량 부족과 농업 생산성 저하 문제 해결에서 출발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농업위원회의 문제의식은 외형적으로 확장됐을 뿐 그 본질은 여전히 같다. 급증하는 세계 인구에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는 점이다. 농업위원회는 이를 ‘삼중 도전(triple challenge)’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첫째,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둘째, 그 과정에서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목표를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달성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현대 농정의 근본 과제라는 것이다.

급증하는 세계 인구에 충분한 식량 공급이 핵심 과제…
R&D 확대 등 생산성의 질적 전환으로 ‘삼중 도전’ 해결

이 삼중 도전을 해내기 위한 첫 번째 축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성 성장’이 제시된다. 전통적으로 농업 생산성은 농지, 비료, 농약 등 투입 요소를 확대하면서 향상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삼림 훼손, 토양 황폐화, 수질 오염 등 환경 부담을 심화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농업위원회는 투입 확대가 아니라 ‘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에 주목한다.

정밀농업, 작물 유전 개선, 로봇공학 및 자동화 기술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산출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환경 부담은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경로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OECD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농업지식혁신시스템(AKIS; Agricultural Knowledge and Innovation Systems) 강화를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생산성의 질적 전환이야말로 삼중 도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생산성 혁신만으로는 세계적 차원의 식량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식량 문제는 단순한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분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는 인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있으며, 국가별 농업 생산 여건 또한 크게 다르다. 생산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이 수요가 집중된 지역으로 원활히 이동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수급 불균형은 해소되기 어렵다.

농업 보조금 같은 정부의 가격개입이 무역 왜곡해… 
환경 관련 무역 조치도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 가능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축이 등장한다. 바로 ‘자유롭고 공정한 농업 무역 환경’이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교역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자원은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세계적 차원의 수요·공급 균형에 더욱 근접할 수 있다. 따라서 농업위원회는 생산성 혁신과 함께 무역 왜곡 완화를 중요한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역 왜곡의 대표적 요인은 농업 보조금이다. OECD는 정부 지원을 생산자·소비자·일반서비스 지원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시장 왜곡 효과가 가장 큰 것이 생산자 지원, 특히 시장가격지지(MPS; Market Price Support)다. 정부가 관세, 매입, 가격 개입 등으로 농산물의 국내 가격을 국제 가격보다 높게 유지하는 방식은 생산 구조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국제적 수급 조정을 제약한다. 이에 농업위원회는 왜곡적 지원을 축소·재편하고, R&D와 혁신 촉진 등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분야로 재원을 재배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OECD가 매년 발간하는 「농업정책 점검 및 모니터링 보고서(Agricultural Policy Monitoring and Evaluation)」에서 확인된다.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54개국(OECD 회원국 38개국, 비회원 EU 5개국, 신흥경제국 11개국)은 2022~2024년 동안 연평균 약 8,420억 달러를 농업 분야에 지원했다. 이 중 74%인 약 6,240억 달러가 생산자 지원에 해당하며, 생산자 지원의 66%인 약 4,100억 달러는 생산 및 무역 왜곡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제공됐다. 반면 일반서비스 지원은 전체 농업 분야 지원의 13.3%인 약 1,119억 달러에 그쳤고, 그중 농업지식혁신시스템 관련 투자는 전체 농업 분야 지원의 3%인 약 250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지원 구조의 재편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비관세 조치 또한 중요한 변수다. 각국 정부들은 비관세 조치로 위생 및 식물위생(SPS; Sanitary and Phytosanitary) 조치, 무역기술 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국경관리 조치, 수량 제한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다. 이 중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것이 SPS 조치다. SPS 조치는 식품 안전과 동식물 질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검역·위생 조치를 의미한다. 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SPS 조치는 전체 비관세 조치의 69%를 차지했다. 물론 SPS 조치는 정당한 공중보건 및 생태계 보호 목적을 갖지만, 과학적 근거와 투명성이 부족할 경우 사실상 무역 장벽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이에 농업위원회는 전자 검역인증 시스템 확대, 과학적 위험평가 강화 등 투명성 제고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환경 관련 무역 조치 또한 주요 논의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체결되는 자유무역협정에는 환경 조항이 점차 확대되고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환경 보호를 위한 예외 조항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환경 목표 설정, 이행 모니터링 기구 설치, 환경영향평가 의무화 등 더욱 구속력 있는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 나아가 특정 환경 요건 충족을 관세 특혜나 쿼터 적용 조건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유형의 조치도 등장하고 있다. 농업위원회는 이러한 조치가 또 다른 형태의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환경 목표 달성을 위한 무역 조치가 급증하고 국가별로 상이하게 설계될 경우, 규정 준수 비용 증가와 집행상의 혼선이 발생해 무역 흐름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 농업위원회는 환경 관련 무역 조치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유형별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농업위원회의 논의 구조는 명확하다. 한 축은 ‘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생산성 성장’, 다른 한 축은 ‘왜곡 완화를 통한 효율적 무역 환경 조성’이다. 이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할 때 삼중 도전에 대한 해법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강점 지닌 농업 혁신과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 
규범 형성에 기여하는 등 전략적 방안 모색할 필요 

이러한 논의는 한국에 적지 않은 도전을 제기한다. OECD 기준에서 한국의 농업 보호 수준은 높은 편에 속한다. 2022~2024년 동안 우리 농가 총수입 중 정부의 지원 비중, 즉 생산자지지추정치(PSE)의 비중은 41%로 OECD 평균인 13%를 크게 상회한다. 특히 해당 기간 생산자 지원의 85%가 시장가격지지에 해당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OECD가 매년 우리나라에 대해 “품목별 지원을 축소하고 비품목 특정화(non-commodity specific) 지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단순한 보호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농업 규모가 제한적이고 농산물 순수입국인 현실에서 보호 장치 없이 주요 작물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단순히 산업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관세 등 보호 조치를 완전히 제거할 경우 생산 기반 약화와 식량 공급 취약성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산업 보호를 유지할 경우 국제 비교 지표상 높은 시장가격지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무역 자유화와 식량안보 사이의 구조적 긴장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한국이 국제 논의에 건설적으로 기여하려면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무역 왜곡 축소 논의에서 방어적 입장에 머무르기보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는 분야에서 규범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그 대표적 영역이 바로 농업 혁신과 디지털 전환이다.

스마트팜 확산, 정보통신 인프라, 데이터 기반 산업 역량은 한국이 비교적 강점을 지닌 분야다. 2025년부터 OECD에서 추진 중인 ‘농업의 디지털 거버넌스’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의 자발적 기여는 이러한 전략적 방향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농업 데이터의 생산·소유·유통 체계를 분석하고 적절한 거버넌스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혁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반 마련을 목표로 한다.

결국 국제 농정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치 경쟁이 아니라 방향 설정이다. 한국은 시장 효율성과 식량안보라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지만, 동시에 생산성 전환과 디지털 혁신이라는 새로운 의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OECD 논의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과 정책 실험이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반영될 필요가 있다. 한국 역시 그 과정에서 더욱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기여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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