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이 너무 많다. 혼날까 봐, 실망시킬까 봐, 나를 싫어할까 봐,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나는 내 자신을 두려워한다. 욕망과 욕심이 너무 많고, 만족을 모르고,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질투의 화신이고, 잔인하다. 그런 내 자신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나를 착하고 친절하고, 진중하고 지적이고, 수줍고 소심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내 진면모를 들키지 않기 위해 쓰고 있는 가면들, 상처받거나 수치심을 겪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들을 내 성격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 스탠리(짐 캐리)는 나를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못 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기저기서 놀림 받고 무시당하는 것은 일상이다. 그럴 때마다 주차요원 같은 어색한 미소로 자신을 보호한다. 나는 늘 짐 캐리를 그 두려움과 분노를 숨기기 위한 어색한 미소로 기억한다.
그런 스탠리가 우연히 신비한 가면을 손에 넣는다. 그 가면을 쓰면 스탠리는 천방지축 과한 슬랩스틱, 무절제한 안면근육의 운동들, 만화처럼 극단적인 CG들을 구현해 내는 초록색 슈퍼히어로가 된다. 나는 인간의 얼굴이 그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쓰는 가면들, 즉 방어기제들은 어린 시절부터 생존과 안정, 만족을 얻기 위해 발달시킨 것들이다. ‘이렇게 하면 안전하고 편하구나!’라고 느꼈던 행동방식들을 갈고닦아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가면은 한 개인이 사회와 타협하며 만들어낸 산물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런 가면들을 ‘페르소나’라고 지칭했다. 페르소나는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벌거벗은 모습이 아니라 옷을 입고 화장을 한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절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으로 나갈 때 쓰는 가면이 두껍고 무겁고 경직될수록 우리는 지치고 외롭고 슬퍼진다. 가면과 나 자신이 동일시되고,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나로 살 수 없고, 이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만 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런 가면을 쓰고 있고 왜 써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필요할 때 그 가면을 쓰고 필요 없을 때 벗을 수 있다. 가면은 가볍고 얇을수록 좋다. 내 자신이 그렇게 못나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면의 두께와 무게가 줄어든다.
우리 실생활에서의 가면과는 반대로, 영화 <마스크>에서는 가면이 숨겨져 있던 나의 진면모를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가면무도회에서 가면을 쓰고 익명의 존재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기만 하는 소심한 스탠리가 가면을 쓰면 그의 본심과 욕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돌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황홀하고 후련한가? 물론 후사가 두렵기에 우리는 결코 우리의 사회적인 가면을 버릴 수 없겠지만.
늘 그렇지만, 균형이 중요하다. 잘못됐거나 불필요한 가면들을 너무 많이 자주 쓰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말 내 생각인지 아니면 남들이 부여한 것인지, 자유롭지만 사회 속에서 적절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인지를. 지치고 화나고 외롭다면 자문해야 한다. 혹시 나의 가면들이 너무 많고 무겁기 때문은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