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파급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선진국들은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했다. 특히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은 금융위기 초기부터 제로금리 수준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확장적 통화정책과 7,87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stimulus package)을 발표하면서 위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합리적인 소비자와 균형재정을 가정할 때 일시적인 재정지출 증가는 궁극적으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리카르도 등가정리(Ricardian Equivalance)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케인지안 경제학에서 말하는 재정지출 증가분보다 더 큰 실질소득 증가가 발생한다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다. 2009년 초 경기부양 정책의 시행에 앞서 두 이론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승수효과 있다” VS “정부 지출은 공짜 점심 아니다”
먼저 당시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자문회 의장(Chair of President Obama’s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맡고 있던 UC버클리의 크리스티나 로머(Christina Romer) 교수는 2009년 1월 10일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중기적으로 1.6에 달한다고 발표하면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학술적 지원에 나섰다. 그러자 하버드대 로버트 배로(Robert Barro) 교수는 2009년 1월 22일 ‘정부 지출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Government Spending is No Free Lunch)’라는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전시가 아닌 평상시(peacetime) 재정승수는 0이라는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하며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이 케인즈의 1936년 이론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 뜨거운 논쟁에 부쳐 일제츠키(Ilzetzki), 멘도자(Mendoza), 베이(Vegh) 등이 공저한 「재정승수의 크기 추정[How big(small?) are fiscal multipliers?]」 은 그동안 개별 국가의 재정승수를 추정하던 전통적 접근에서 벗어나 패널 자료를 이용해 각각 다른 경제 환경 아래에서 변화하는 재정승수를 추정했다. 2013년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에 게재됐지만, 2010년 발표된 워킹페이퍼부터 학계와 정책당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논문에서 일제츠키 등은 선진국 20개국과 개도국 24개국을 포함한 44개국의 1960년 1분기부터 2007년 4분기까지의 자료를 대상으로 패널 벡터자기상관회귀모형(Panel VAR)의 누적 충격-반응 함수로부터 각각 다른 경제 상황에서의 장단기 재정승수를 추정했다.
일제츠키 등의 결과는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개발도상국에서는 재정승수가 낮고 GDP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일시적이지만, 선진국에선 상대적으로 승수가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재정지출이 시작되는 분기에서 승수는 선진국에선 0.39, 개도국에서는 -0.029가 추정됐다. 장기 재정승수의 경우에도 선진국에선 0.66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재정승수가 추정됐으나 개도국은 -0.63이 추정됐고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도 않았다. 둘째, 고정환율제에선 높고 지속적인 재정승수가, 변동환율제에선 음의 장기 재정승수가 추정됐다. 고정환율제에선 장기 재정승수가 1.4에 달했으나, 변동환율제에선 -0.69의 음의 값이 추정됐다. 셋째, 무역의존도가 GDP의 60%를 넘지 않는 국가군에선 1.1 수준의 장기 재정승수가 추정됐으나, 무역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군에선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수준에서의 음(-0.46)의 재정승수가 추정됐다. 위의 두 결과는 전통적인 먼델- 플레밍 법칙(Mundell-Fleming Model; 각 국가의 환율제도와 자본이동의 자유로운 정도가 해당 국가와 교역 상대국의 생산·금리·물가 등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가를 수식으로 규명한 이론)이 시사하는 바와 일치한다. 넷째, 중앙정부의 채무가 GDP의 60% 이하인 국가군에선 장기 재정승수가 0에 가까운 수준(-0.36)으로 추정됐으나, 60% 이상인 국가군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3 수준의 장기 재정승수가 추정됐다. 이는 국가채무가 높은 수준의 국가에서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합리적인 민간 주체는 가까운 미래에 재정긴축이 시행될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지출을 크게 줄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투자의 장기 재정승수가 정부소비의 재정승수보다 크게 나타나며, 특히 개도국에선 장기 승수가 1.6까지 추정됐다.
확장적 재정정책, 경기부양엔 성공했으나 높은 국가채무 문제 남겨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제츠키 등은 장기 재정승수는 경제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단기 승수는 대체로 작게 나타나기 때문에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논문을 마무리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츠키 등의 연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4분기까지의 자료를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었으나, 이제 6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금융위기의 정책 효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평가가 가능해졌다. 이에 필자와 편주현 고려대 교수가 공저해 2015년 Contemporary Economic Policy 에 게재된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동안의 재정승수 추정(Fiscal Multipliers During The Global Financial Crisis: Fiscal and Monetary Interaction Matters)」 은 21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일제츠키 등과 같은 연구방법론을 사용하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재정승수를 비교했다. 본 연구에서는 2000년 1분기부터 2007년 3분기까지의 자료를 금융위기 이전으로, 2007년 4분기부터 2012년 2분기까지의 자료를 금융위기 이후로 정의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부터 진행됐던 논쟁을 실제 자료를 갖고 검증할 수 있게 됐다.
편주현 교수와 필자의 분석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0.42 수준이던 단기 재정승수는 위기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한 1.87 수준으로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논문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상호작용에서 재정승수 변화의 원인을 찾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정부 소비 증가로 인해 총수요가 증가하면,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막기 위해 통화정책은 이자율을 올리는 긴축 정책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이자율 상승은 민간투자를 줄이고, 실질환율을 절상시켜 순수출 감소를 야기하는 경로를 통해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발생시킨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대표되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했다. 낮아진 이자율은 투자를 높이고, 실질환율 절하를 통해 순수출 증가를 야기해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동안의 승수효과를 크게 만든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는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동안 선진국들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경기부양에 성공적이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 경제에는 여전히 큰 숙제가 남겨져 있다. 금융위기 기간 동안 공격적인 재정확장의 결과 주요 선진국들은 높은 국가채무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제 재정긴축을 통한 재정건전성 회복과 함께, 위기 기간 내내 유지하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정상화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에 마주치고 있다. 벌써부터 미국 재정절벽(fiscal cliff)이나 유로지역 재정건전화 정책 시행의 난점에 대한 뉴스들이 들려오기도 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동시에 긴축으로 갈 때의 선진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한 번 연구자와 정책당국자에게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 이 글에서 소개한 논문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 Ilzetzki, E. Mendoza, and C. Vegh. 2013 “How Big(Small?) are Fiscal Multipliers?”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60, pp.239-254.
- Pyun, Ju Hyun. and Rhee, Dong-Eun. 2015 “Fiscal multipliers during the global financial crisis: fiscal and monet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