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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억7천만 젊은 거인 방글라데시를 주목하라
이성훈 KOTRA 방글라데시 다카무역관 차장 2026년 03월호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거쳐 탄생한 방글라데시는 동쪽과 서쪽, 북쪽이 모두 인도에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벵골만 해안이 펼쳐져 있다.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지만 비교적 개방적이고 온건한 문화를 지닌 나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방글라데시 하면 빈곤과 자연재해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약 1억7천만 인구를 지닌 거대 시장이자 지난 10여 년간 연평균 6%대 성장을 이어온 역동적인 국가다.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기엔 시장의 크기와 성장 속도 모두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올해는 2월 총선과 11월 유엔으로부터의 최빈개도국 지위 해제라는 국가적 변곡점이 맞물리는 해다. 2024년 8월 정치적 변동을 겪으며 약 1년 반 동안 과도정부 체제가 이어져 온 방글라데시는 2월 총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일부 지연됐던 사회·경제 정책이 다시 추진력을 얻는다면 투자·진출 관점에서 ‘정책 재가동의 창’이 열릴 수 있다.

한·방글라데시, 40년간 기성복산업으로 이어온 인연…
높은 인구밀도, 단일 언어·종교로 마케팅 효율 극대화

아직 한국에서는 방글라데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한국의 전체 교역국 중 규모가 50위권을 맴돌 정도로 존재감이 크지 않고, 많은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낯선 나라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수출의 85%를 차지하는 기성복산업의 뿌리에 한국이 있다. 1979년 대우그룹이 부산 공장으로 초청했던 ‘130명의 연수생’은 귀국 후 방글라데시 최초의 현대식 공장인 ‘데시 가먼츠’를 설립하며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뒤이어 1980년 현지에 진출한 영원무역은 현재 8만 명 이상의 현지인을 고용하며 연매출 3조5천억 원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최근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핵심 공적개발원조(ODA) 공여국으로서 2027년까지 30억 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약정하고 송배전망, 상수도, 국립병원센터, 대형 교량 등 국가 기간망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 내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2만 명 이상의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은 양국 경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이들이 귀국 후 형성하는 친한(親韓) 네트워크는 우리 기업의 현지 안착을 돕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가치는 숫자로 나타난다. 우선, ‘총량’이 강점이다. 1억7천만 인구의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소득 기준 상위 1%만 추려도 170만 명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발간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6」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상위 1%의 평균 순자산은 약 13억 원에 달하며, 상위 10%는 3억 원가량의 평균 순자산을 보유해 국가 전체 부의 58%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산 집중도가 크다. 명목 GDP가 4배 이상인 한국의 상위 1%가 약 50만 명이고 평균 순자산이 94억 원 수준임을 고려할 때 방글라데시 프리미엄 소비시장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압도적 인구밀도에서 나오는 잠재력이 있다. 방글라데시는 한반도의 약 60% 면적에 1억7천만 명이 살고 있다. 1km²당 1,350명이 밀집한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밀도 사회다. 특히 수도 다카와 항구도시 치타공에 인구와 자본이 집중돼 있어 유통망 구축과 마케팅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다. 또한 단일 언어(벵골어)와 압도적인 단일 종교 구조는 사회적 분열 비용을 낮추는 요인이며, 정책적 결단이나 혁신 기술이 도입될 때 시장 전파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풍부한 젊은 인구가 만드는 성장 여력이다. 방글라데시는 평균 연령이 26세로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영어를 제2공용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고학력 청년층 인구가 대거 포진해 있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매우 높다.
 

중산층 확대, 디지털 전환 가속 등 시장구조 변화 중…
솔루션 등 수출모델 고도화와 다카무역관 사업 활용 추천

방글라데시의 전통 산업인 의류 분야는 이제 단순 봉제를 넘어 인조섬유·신발·가방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베트남, 중국 등에 진출한 한국 봉제 기업들도 점차 방글라데시로 이전을 검토하는 추세다. 최근 2년간 정체된 인프라 분야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재개될 예정이다. EDCF 및 다자개발은행(MDB) 자금을 활용해 메트로·신도시 개발 관련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우선적으로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들의 활발한 수주가 기대된다.

혁신 수요도 거세다. 2027년부터 적용될 EU의 디지털제품여권(DPP) 제도로 인해 방글라데시 섬유 업계는 탄소 배출 모니터링 관련 ICT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또한 단순 시공을 넘어 운영·모니터링 시스템 등 연관 패키지 솔루션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중산층과 부유층은 약 4천만 명으로 집계되며 2030년까지 약 6천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의 소득 증가로 프리미엄 소비재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K뷰티를 중심으로 한 한국 브랜드의 위상이 돋보인다. 현지 스킨케어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며 300% 이상의 누적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 화장품은 ‘프리미엄·신뢰·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인삼, 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도 가속되고 있다. 모바일금융서비스(MFS) 이용자가 1억 명을 돌파하며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 중이다. 이에 따른 핀테크 솔루션, 사이버 보안, 공공 행정 디지털화 프로젝트 수요는 한국 솔루션 기업들의 진출 기회가 넓은 유망 영역이다. 저렴한 인건비로 풍부한 현지 IT 인력을 활용한 AI 데이터 전처리 및 솔루션 개발 협력 등 기술 협력 모델의 확장성도 매우 높다.

기업들이 올해 방글라데시에 진출한다면 세 가지 핵심 변곡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 재건 드라이브다. 2월 총선 이후 들어선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간 지연됐던 대규모 인프라 및 ICT 프로젝트를 신속히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올 11월 최빈개도국 지위 해제에 따른 친외국인투자 정책의 강화다. 그간 최빈개도국 지위로 누려온 관세 특혜가 축소됨에 따라 새 정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점차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한·방글라데시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타결 추진이다. 협정이 타결될 경우 우리 소비재와 중간재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ODA 재원의 전략적 활용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기존의 토목, 교육 중심에서 AI 기반 교통시스템, 공정 자동화 및 모니터링, 디지털 행정 등 기술 집약적 프로젝트로 외연이 확장될 수 있도록 우리 기업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둘째, 수출모델을 ‘상품’에서 ‘서비스·솔루션’으로 고도화해 볼 수 있다. 단순 소비재 판매를 넘어 OEM·ODM 서비스 또는 EU DPP 규제 대응형 ESG 관리 솔루션 패키지 수출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코트라 다카무역관 사업을 적극 활용해 보길 바란다. 올해 2분기 ‘AI·ICT-인프라 로드쇼’, 하반기 ‘방글라데시 뷰티 전시회’ 내 한국관 그리고 유망 소비재 판촉전인 ‘K-Goods Festa’ 등을 현지에서 추진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현지 파트너 발굴, 시장조사와 관련된 공식 서비스들은 상시 운영되고 있다.

벌판 끝에 홀로 떨어진 작은 웅덩이를 택한 개구리는 남들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의 큰 비가 내려 웅덩이가 거대한 호수로 변한다면, 그곳의 주인은 가장 먼저 그 자리를 지키며 생태계를 파악한 개구리가 된다. 지금 방글라데시는 웅덩이가 호수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다. 정치적 과도기와 저개발국가 특유의 비효율이라는 파고도 존재하지만, 1억7천만 명의 젊고 ‘밀도 있는’ 인구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분명한 잠재성을 보여준다. 바로 지금이 방글라데시시장을 다시 살펴볼 시점이다. 아직은 작아 보일지라도 선제적 투자와 관심을 통해 작은 웅덩이가 큰 연못으로 변하기 전 미리 자리를 잡을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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