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석유와 가스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수송로가 흔들리는 순간 전력 수급, 산업 생산, 물가가 동시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태양광과 풍력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중요한 선택지다. 햇빛과 바람은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원이고, 일단 설비를 설치하면 20~30년 동안 연료를 들여오지 않아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라고 해서 자원안보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터빈이 그냥 확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광을 전기로 바꾸려면 모듈이 필요하고, 그 전후방 공급망에는 셀, 유리, 웨이퍼, 전력변환장치 등이 포함된다. 풍력도 블레이드, 발전기, 기어박스, 타워, 해저케이블, 항만과 계통 인프라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연료를 사 오는 문제는 줄어들지만, 설비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이것이 재생에너지 시대의 새로운 자원안보다.
재생에너지 늘수록 설비·부품 안정적 확보 문제 중요…
주요국은 관련 법 제정해 청정기술 설비 역내 설치에 주력
화석연료의 자원안보는 대체로 ‘끊기지 않게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석유나 가스는 사용하면 없어지는 연료이자 원료이기 때문에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이 중요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다르다.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터빈은 한 번 설치하면 20년 이상 쓰는 설비다. 따라서 재고를 쌓아두듯 설비를 갖추는 방식으로는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 기술이 빨리 바뀌고 부품의 종류도 많으며 대형 설비를 오래 보관하는 비용도 크기 때문이다. 결국 재생에너지 자원안보의 핵심은 평소에 필요한 설비를 만들고, 고치고, 다시 조달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갖추는 데 있다.
국제 흐름은 이미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Renewable 2025」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태양광 위주로 총 4,600GW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이 거대한 시장의 제조 기반이 특정 국가에 크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태양광은 폴리실리콘, 웨이퍼, 셀, 모듈 등 대부분 단계에서 중국 비중이 매우 높다. 배터리, 전력망, 풍력터빈에 필요한 핵심광물도 채굴보다 정제와 가공 단계에서 특정 국가 집중이 심하다. 에너지 전환이 진행될수록 공급망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주요국은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에너지정책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산업정책의 대상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청정기술 제조가 미국 안에서 이뤄지도록 세액공제 제도를 마련했다. EU도 「탄소중립산업법」을 통해 2030년까지 필요한 청정기술 설비의 40% 이상을 역내에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얼마나 싸게 설치하느냐에 집중하던 정책의 기준이 이제는 위기 때 필요한 설비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자국 산업을 진흥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 흐름 속에 한국의 과제도 분명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선택적으로 늘려도 되는 전원이 아니라 앞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믹스 안에서 반드시 비중을 키워야 할 전원이다. 국내 공식 통계상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0년 6.6%에서 2024년 10.6%로 높아졌고, 2024년 발전량도 63.2TWh로 전년보다 11.7% 증가했다. 처음으로 발전 비중 10%를 넘어섰다는 점은 의미 있는 변화지만 전기차,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처럼 대규모 전력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추진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전력 수요 변화와 에너지믹스 전환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관건은 국내 산업 기반이다. 태양광 셀과 모듈에서는 일정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웨이퍼나 저철분 유리처럼 중요한 소재·부품은 국내 기반이 약하거나 사실상 일부는 비어 있다.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국내 기업이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도 계속됐다. 풍력은 조금 다르다. 후판, 타워, 하부구조물, 전력케이블처럼 조선·철강·해양플랜트 역량과 연결되는 분야에서는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대형 터빈, 나셀(nacelle) 내부 핵심부품 등에서는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격차가 크다. 해상풍력은 인허가, 주민 수용성, 항만 설치, 계통 연결이 늦어지면 기업이 실적을 쌓을 기회도 줄어든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커질수록 산업 기반의 의미도 달라진다. 필요한 설비를 해외에서 들여오면 단기적으로 보급량을 늘릴 수 있겠지만, 국내 산업 기반이 함께 커지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확대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급망이 흔들릴 때 설비 조달과 유지보수 비용이 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국은 국내 산업 기반 조성이 관건…고장·교체 수요 대응하고
보급 속도와 제조 기반 동시에 끌어올려야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단순히 설비를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사업 경험을 쌓으며, 고장과 교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태양광에서는 차세대 셀과 모듈, 전력변환장치, 핵심소재의 투자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풍력에서는 하부구조물, 해저케이블, 해상 설치와 운영·정비 역량을 키우고, 국산 터빈과 핵심부품이 실제 사업에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시장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도 이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태양광은 단순한 가격 경쟁 위주의 보급제도에서 벗어나, 장기 고정가격 계약과 공공 주도 물량을 통해 국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수요 예측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취약 품목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과 생산투자를 함께 지원해야 한다. 보급시장이 해마다 흔들리면 기업은 새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바꾸기 어렵다. 정부가 언제, 얼마나, 어떤 기준으로 재생에너지를 살 것인지 미리 보여주는 것 자체가 산업정책이 될 수 있다.
풍력은 프로젝트가 실제로 착공, 운영되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장기 입찰 로드맵, 계통 접속, 항만·설치선 확보, 군 작전성 평가와 인허가의 예측 가능성이 함께 개선돼야 국내 터빈과 부품 기업도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다.
한국은 보급 속도와 제조 기반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미국과 유럽은 막대한 재정 지원과 규제를 결합해 자국 내 청정기술 제조 생태계를 다시 만들고 있고, 중국은 이미 가격과 규모의 우위를 확보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정책일 뿐 아니라 산업정책이다. 에너지믹스의 전환이 국내 산업 생태계의 전환과 함께 갈 때, 재생에너지는 수입 연료를 대체하는 발전원을 넘어 한국의 새로운 자원안보 기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