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움직임이 거세다. 우리나라도 현행 시간당 6,030원인 최저임금을 1만원 안팎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소득층의 삶의 질이 나아질 뿐 아니라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증가 경기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들은 최저 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사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최저임금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선진국, 최저임금 인상 러시
선진국에선 독일이 지난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데 이어 최근 영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에서도 속속 최저임금을 높이고 있다. 영국은 생활임금(National Living Wage) 개념 을 도입, 지난 4월 1일부터 25세 이상 노동자 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6.7파운드(약 1만883 원)에서 7.2파운드(1만1,700원)로 올렸다. 영국 정부는 연평균 6.25%씩 인상해 2020년에 시간당 9파운드(중위 근로소득의 60%)까지 올릴 계획이다. 생활임금은 물가 등을 고려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개념이다. 미국에서는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1만 7,300원) 선으로 올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연방 최저임금을 15 달러로 인상하는 것을 주장하는 데 반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일부 주만 15달러로 올리고 연방 최저임금은 12달러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최저임금을 7월부터 월 7,500루블(약 12만 6,300원)로 20% 올린다. 일본도 매년 최저임금을 3%씩 인상할 방침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정치권이 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우면서 불을 댕겼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최대 9천원,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1만원, 정의당은 2019년까지 1만원을 각각 목표로 제시했다. 각 정당이 내건 목표치가 달성되려면 최저임금 인상률은 해마다 두 자릿수가 돼야 한다. 새누리당 목표대로라면 매년 10.5%, 더민주는 13.4%, 정의당은 18.4% 씩 인상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도 최저임금을 논의 중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 이듬해 최저임금을 결정·고시한다.
최저임금을 보는 두 가지 시각, ‘삶의 질’이냐 ‘일자리’냐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받는 임금의 하한선을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뉴질랜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저임금제를 최초로 도입한 나라다. 1894년 뉴질랜드에서 최저임금제가 시작된 건 여성과 아이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노동착취를 금지하기 위해서였다. 호주에선 1896년, 영국에선 1909년 시행됐다. 미국에선 191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했으며, 연방 최저임금제는 대공황의 여진이 이어지던 1938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도입했다. 미국의 최저임금제는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하는 최저임금으로 구분된다.
대학에서 배우는 경제학원론은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통제는 ‘시장의 복수(Market Strikes Back!)’를 낳는다.”고 가르친다. 최저임금 인상에는 ‘일자리 감소’라는 대가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설이 도전받고 있다. 앨런 크루거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저지주의 최저임금 인상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10대들의 상관관계를 분석, 1994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10대 고용이 감소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2013년 데일 벨먼 미시간주립대 교수 역시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유의미한 부정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인 요나 루빈스타인 브라운대 교수(2011년)와 제러미 웨스트 MIT대 교수(2013년)는 “여전히 최저임금은 일자리를 감소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근로자 가운데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비율(최저임금 적용률)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18.2%로 가장 높다. 5명 중 한 명이 대상이다. 반면 프랑스는 10.8%, 영국과 미국은 각각 5.3%, 3.9%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최저임금적용률이 높은 것은 영세자영업자가 많은 데다 최저임금 계산 때 기본급과 정기적으로 주는 일부 고정성격의 수당만 포함될 뿐 상여금이나 성과급 등은 빠지기 때문이다. 연봉 4천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통계상으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걸로 집계된다. 반면 외국에선 상여금이나 급식수당, 가족수당 등이 모두 최저임금 산정 때 포함된다.
최저임금 인상 좋지만 국민소득·생산성 낮은 현실도 감안해야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0년 들어 연평균 7.3%로 가파르게 올랐다.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치를 뛰어넘는다. 현재 최저임금인 시간당 6,030원을 적용하면 연급여는 1,512만원(월급 126만원, 소정 근로시간인 월 209시간 기준)이지만 최저임금이 선진국의 시간당 1만원 수준으로 인상되면 연급여는 2,508만원(월급 209만원)이다. 최저임금이 이 정도 수준으로 뛰면 최저임금 대상 사업장 가운데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가족노동으로 대체하든지 아예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선진국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근로자의 40.4%는 근로자 수가 1~4인 사업장에, 25.3%는 5~9인 사업장에서 일한다. 30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81.5%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이 83.9%로 절대 다수다.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 시급 6,030원은 2014년 미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 기준으로 81% 수준, 2인~3인 가구 생계비에는 34% 수준밖에 충족하지 못한다.”며 내년 적용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월급 209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700만 소상공인들의 모임인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소득불균형이 개선되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문제는 소상공인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월평균소득은 172만원에 그친다. 현행 시급 6,030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50대 이상 자영업자 중 40% 이상은 월평균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 외에 생산성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2013년 기준)은 OECD 평균 대비 73.7%, 미국의 52.5%, 일본의 82.5%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9년째 2만달러 선으로 선진국의 절반 정도이고, 생산성은 낮은데 최저임금만 급격하게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 건 우리 경제에 약(藥)보다는 독(毒)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