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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 곁의 철학플라톤이 경계한 상상의 힘, ‘만약 그랬다면…’
허유선 『인생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철학할 것』 저자 2023년 04월호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널 보내기 전에 모두 알았더라면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 지금 혹시 차 한잔을 같이 했을까?’ 신승훈의 노래 ‘나비효과’의 한 구절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쯤 돼서야 겨우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관계가 아무리 받는 사람에게 그대로 갚지 못하고, 받은 것을 새로운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하지만(그래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지금 만났더라면 더 잘해 주고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비단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삶의 길목에서 불현듯 만약을 생각하게 만드는 과거가 있다. 지난 과거는 아무리 ‘If’,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도 큰 것을 바라기 어렵다. 시간을 되돌려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다르게 했다면/다르게 됐다면 어땠을까?’를 묻는 일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 눈앞에 없는 일을 다양하게 그려보는 일이다. 서양철학은 오랫동안 이런 활동을 ‘상상(imagination)’으로 불러왔다. 우리는 흔히 ‘상상’을 미래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상상이라는 말 어디에도 상상하는 시점에 대한 제한은 없다. 지금 눈앞의 것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일부러 그려서 떠올려야 한다. 과거의 회상도 그렇고, 미래를 꿈꾸는 일도 그렇다. 이것이 바로 전통 서양철학에서의 상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래에 관한 상상과 과거에 관한 상상을 다른 종류로 간주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은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 상상은 미래에 대한 것이든 과거에 대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플라톤은 상상을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으로 규정하고, 모든 상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오늘날 상상력을 강조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플라톤에게 존재하지조차 않는 대상에 대한 생각은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도 참된 앎이 될 수 없었다. 나아가 그는 상상에 매혹돼 참된 삶과 멀어질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에게 상상은 삶의 진면목을 바라보게 하기보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것에 빠져 삶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상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경계한 것은, 그만큼 상상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상상은 진리와 다르다. 어떤 것이 진리라면, 그와 다른 생각은 비(非)진리, 곧 참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상상은 다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일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틀릴 수가 없다. 그래서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와 다양한 그려보기가 가능해진다.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무엇인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기대는 이러한 상상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생생하게 겪었던 그때의 현실 혹은 기억이 나의 상상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다양하게 그려보기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에서의 상상은 어떨까? 지난 일이 ‘지나칠 수 없는 것’으로 현재의 내게 찾아온 것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과거가 문득 떠올라 다시 상상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현재가 과거에 대한 기존의 제한된 그림으로부터 그 자신을 풀어주기를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한때는 지금과 과거를 잇는 상상이 매우 그럴듯했지만, 이젠 그 그림이 달라질 시점이 온 것이다. 있었던 일을 왜곡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사건과 현재의 내가 만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삶의 진면목을 다시 바라보고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얼마든지 다시 그려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상상은 미래에 대한 상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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