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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쓸모없음의 쓸모‘다꾸‘를 한다는 것
김중혁 소설가 『펭귄뉴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작가 202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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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무렵 자기 관리에 관심이 많았을 때 시스템 다이어리를 사용한 적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해야 할 일을 적어 넣고 가치와 역할과 우선순위로 하루를 설계하는 다이어리였는데, 나는 거기에다 꾸미기를 시도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사진을 오려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영수증이나 스티커를 붙이고, 예쁜 도장을 찍었다. 할 일이 많아지고 약속이 많아질수록 꾸미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20대 후반이 되자 휴대전화가 보편화됐고 컴퓨터 가격이 저렴해졌다. 아날로그 다이어리 세계에서 멀어졌고 휴대전화와 컴퓨터로 아이디어와 일정을 기록했다. 한동안 시스템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몇 달 전 일본에 가서 문구 쇼핑을 하다가 ‘트래블러스 노트’를 알게 됐다. 가로가 짧고 세로는 길쭉한 특이한 판형의 노트였다. 만년필 사용에 최적화된 종이였고,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드는 여백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검색하다가 트래블러스 노트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의 노트 활용법을 봤다. 여행 기록을 한 권의 책처럼 꾸민 사람도 있었고, 전문가 뺨치는 실력의 일러스트로 다이어리를 꾸민 사람도 있었고, 일상의 기록을 다양한 도구(스탬프, 스티커, 형광펜 등등)로 아름답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 잊고 있던 ‘다꾸’의 문을 다시 열게 됐다.

‘다꾸’의 핵심은 뭘까?

그동안 수많은 종이 노트를 사용해 왔다. 주간 계획과 월간 계획이 포함된 다이어리를 사용한 적도 있는데, 꾸미기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종이 노트에 아이디어도 적었고, 소설도 썼고, 다양한 정보를 기록했는데 ‘다꾸’는 하지 않았다. ‘다꾸’는 말 그대로 형식이 중요하다.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내 식대로 꾸며야 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형식이다. 여행지에서 떠오른 영감을 적은 페이지보다는 여행지에서 갔던 전시회장의 입장표를 예쁘게 오려 붙이고 즉석에서 인화한 사진을 곁들이는 게 ‘다꾸’의 정수에 가깝다.

‘다꾸’ 취미에 대해 털어놓았더니 어떤 사람이 이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저도 다꾸 엄청 좋아하는데요, 펀치로 구멍 뚫어서 종이 붙이고, 스탬프 찍고, 색색의 펜으로 페이지를 예쁘게 만드는 것에 비해 내용이 너무 부실한 것 같아 늘 고민이에요.”

그 사람에게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때로는 형식이 곧 내용인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페이지를 꾸미기 위해서 가위로 오리고 칼로 자르고 풀로 붙였던 그 시간이 페이지에 고스란히 남는 게 아닐까요?”

다이어리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혼합해서 담을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적으면서 미래를 상상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면서 하루를 찬찬히 돌아보고, ‘바로 지금의 마음’을 다양한 꾸미기로 표현할 수 있다. 일상의 경험을 문자로 온전히 기록할 수 없을 때 ‘다꾸’라는 형식은 나의 감각을 충실히 보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먼 훗날 다이어리를 다시 펼쳤을 때 적힌 언어보다 꾸미기의 형식이 ‘그날의 나’를 더욱 잘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휴대전화는 조금 멀리하고 다양한 종이와 도구를 구매해 ‘다꾸’에 전념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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