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오픈AI가 텍스트 몇 줄만으로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AI 모델 ‘소라(SORA)’를 공개했을 때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할리우드는 긴장했고, 크리에이터들은 열광했으며, 영화감독 타일러 페리는 8억 달러 규모의 스튜디오 확장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뒤인 지난해 9월, 드디어 독립 앱으로 출시된 소라는 앱스토어 사진·영상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뒤인 지난 3월 24일, 오픈AI는 갑작스럽게 소라의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디즈니와의 10억 달러(약 1조4천억 원) 규모의 파트너십까지 함께 무너졌다. 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이 왜 이렇게 빨리 퇴장한 것일까? 그리고 이 퇴장은 AI산업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놀라움은 있었지만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소라는 분명 놀라운 기술이었다. 텍스트 몇 줄만 입력하면 사실적인 영상이 만들어지는 경험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출시 직후 다운로드 수가 폭발했고, 사용자들은 피카츄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영상, 마리오가 요리하는 영상 같은 재미있는 콘텐츠를 쏟아냈다. 동시에 유명인의 딥페이크 영상이나 저작권 캐릭터를 무단 사용한 콘텐츠도 넘쳐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로빈 윌리엄스의 유족이 직접 나서서 영상 제작 중단을 호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놀라움’이 일회성에 그쳤다는 것이다. 모바일 분석 기관 앱피겨스(Appfigures)에 따르면, 소라 전용 앱 다운로드 수는 지난해 11월 약 333만 건에서 지난 2월 약 113만 건으로 3개월 만에 3분의 1로 줄었다. 전 세계 이용자 수도 약 100만 명을 정점으로 50만 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한두 번 영상을 만들어보고, 친구에게 공유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앱 서비스 기간 동안 인앱 결제 수익은 고작 210만 달러(약 29억 원)에 불과했다. 챗GPT가 주간 9억 명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다.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돈을 낼 만큼 필요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소라의 퇴장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불과 3개월 전 체결된 디즈니와의 대형 파트너십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디즈니는 오픈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마블·픽사·스타워즈를 포함한 200개 이상의 캐릭터를 3년간 소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사용자들이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이나 토이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영상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AI 영상 생성의 미래에 베팅한 것이다. 당시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정말 숨 막히는 성장에 참여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거래도 소라를 살리지 못했다. 더 놀라운 것은 통보 방식이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디즈니 팀은 오픈AI와 소라 관련 회의를 마친 지 불과 30분 만에 서비스 종료 소식을 전달받았다. 실제로 투자금이 집행되기 전이었기에 금전적 손실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AI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얼마나 불안정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컴퓨팅 자원이라는 냉혹한 현실
그렇다면 왜 오픈AI는 디즈니까지 포기하면서 소라를 접었을까? 핵심은 컴퓨팅 자원의 한계에 있었다. AI 영상 생성은 텍스트 생성에 비해 10~15배의 컴퓨팅 파워(연산 능력)를 소비한다. 10초짜리 영상 한 편을 만드는 데 GPU 4개가 약 10분간 동시에 가동돼야 하고, 그 비용이 건당 약 1.3달러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소라는 하루에 약 100만 달러(약 14억 원)의 운영 비용을 소모하고 있었다. 피크 시기에는 하루 1,500만 달러(약 210억 원)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소라 책임자 빌 피블스 역시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에서 “현재의 경제 구조는 완전히 지속 불가능하다”고 시인한 바 있다. 소라의 총매출 210만 달러는 하루이틀치 운영 비용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소라에 투입되는 GPU 한 대 한 대가, 훨씬 많은 수익을 만들어내는 챗GPT와 코딩 도구에서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오픈AI 애플리케이션 부문 CEO 피지 시모는 직원들에게 “더 이상 산만한 사이드 퀘스트에 자원을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올 연말 기업공개(IPO)를 앞둔 오픈AI로서는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숫자가 분명해야 했다. AI 업계에서 컴퓨팅 자원은 곧 전략적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을 소라의 퇴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소라를 접은 오픈AI가 선택한 방향은 ‘슈퍼앱’이다. 챗GPT, 코딩 도구 코덱스(Codex), 웹 브라우저 아틀라스(Atlas)를 하나의 데스크톱 앱으로 통합해 대화, 코딩, 웹 검색을 한 화면에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픈AI 사장 그렉 브록만은 “소라 모델은 핵심 GPT 계열과는 다른 기술적 갈래”라며,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환의 배경에는 경쟁사 앤스로픽의 약진이 있다.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는 지난 3월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앱이 됐고, 특히 코딩 도구와 업무 자동화 영역에서 기업 고객을 빠르게 확보해 나갔다. 화려한 소비자 제품 대신 실질적인 업무 도구에 집중한 전략이 통한 것이다. 오픈AI 내부에서는 이를 ‘코드 레드’ 상황으로 인식했다. 결국 오픈AI의 전환 전략은 ‘화려하지만 돈이 안 되는 것’에서 ‘평범하지만 돈이 되는 것’으로의 이동이었다. 현재 오픈AI는 월 매출 2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엔터프라이즈 매출이 전체의 40%를 넘어섰다. 놀라움을 파는 것에서 생산성을 파는 것으로 AI 비즈니스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와우’에서 ‘워크’로, AI산업의 생존 법칙
소라의 퇴장은 오픈A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생성형 AI산업 전체가 ‘기술 시연의 시대’에서 ‘비즈니스 실증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AI 영상 생성 시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글의 비오(Veo), 런웨이(Runway), 중국 바이트댄스의 시댄스(Seedance)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트댄스조차 저작권 문제로 글로벌 출시를 지연시키고 있는 만큼 소비자 대상 AI 영상서비스의 수익화는 업계 공통의 난제다.
결국 AI산업의 판도는 ‘누가 더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사용할 제품을 누가 만드느냐’로 재편되고 있다. 한 번 감탄하고 떠나는 제품보다는 매일 업무에서 꼭 필요한 도구가 돼야 살아남는다. 이것은 AI 기업뿐 아니라 AI를 도입하려는 모든 기업과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도입하려는 AI가 ‘놀라운 데모’인지, 아니면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 소라의 퇴장은 AI 시대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바로 이 구분임을 분명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