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개발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위성·발사체 분야를 중심으로 우주시장을 육성 중인 가운데 10년 넘게 탐사로봇 분야에만 몰두해 온 기업이 있다. 달과 화성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무인탐사연구소’는 아직 국내에 탐사로봇시장이 형성되지도 않고 표준화 단계조차 없는 상황임에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달에 가면 가장 먼저 첫 삽을 뜨고 6분의 1의 중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이재호 대표를 만났다.
무인탐사연구소를 소개하자면?
국내 유일의 달 탐사 무인로봇 로버(rover)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기계·전자·토목 분야 전문가를 포함해 총 20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프리(pre)시리즈 A라운드를 진행하며 약 130억 원을 투자받아 로버를 탐사선에 탑재해 우주로 보낼 비용을 마련했다. 탐사로봇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프리 시리즈 단계로 투자가 진행 중인데, 우주에 제품을 보내는 경험을 쌓고 우주시장에 참여할 자격인 ‘우주 헤리티지(Heritage)’를 갖춘 이후엔 시리즈 A단계의 투자시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
전공이 토목이라 들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2019년 미국 우주항공국(NASA), 유럽 에어버스가 주관하는 달 탐사 경연대회 ‘더 문 레이스(The Moon Race)’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 위한 회의에서 창업자인 조남석 전 대표를 처음 만났다. 당시 조 대표는 기계·로봇 전공 학부생이었고 저는 우주 건설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막 마친 포닥이었다. 제 꿈이 달에 집을 짓는 건데 당장 지을 수는 없지 않나(웃음). 일단 극한 환경에서도 자동화할 수 있는 로버 제작부터 시작한 다음 3D 프린팅으로 전초기지를 짓는 등 행성개발에 대한 장기 비전을 이루고자 한다.
‘더 문 레이스’는 어떤 대회인가?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달 탐사를 비롯한 기지 건설, 인프라 구축 등의 기술을 검증하는 국제대회다. 이는 미국이 2020년 중국·러시아와의 우주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만든 다자간 국제협정인 ‘아르테미스 협정’으로도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도 2021년 아르테미스 협정에 참여해 현재까지 우주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우주에서 로버의 역할은 무엇인가?
주목적은 행성 표면 탐사다. 가까운 미래에는 로버가 미지의 행성에서 과학 임무에도, 상업 모델로도 활용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달 표면의 험지를 다니며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광물 탐사·채취를 원하는 고객사의 탑재체를 태워 임무를 지원한다. 로버로 찍은 이미지 데이터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모델이 있다. 적외선 센서의 파장을 측정하면 이미지만으로 표면에 있는 자원을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밟았던 달 표면의 발자국 이미지를 보고 중력을 고려한 발자국 깊이, 압밀(壓密) 등을 추정해 달 표면의 흙 데이터를 분석하는 지질학자도 있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달 토양과 비슷하게 만든 복제토에서 우리 로버를 시험 운행하고 있다.
로버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수겠다.
우주는 진공 상태인 데다 달의 경우 영상 130도에서 영하 170도가 넘는 극저온이 공존하는 환경이다. 로버엔 이를 버티는 고내구성 차체와 배터리 기술 외에도 데이터 송수신, 이미지 촬영, 구동제어장치인 전자속도제어(ESC) 등 복합 기술이 집약돼 있다. 우리 연구소는 로버 전반의 모든 기술을 커버하고 있는데, 그중 ‘로버의 뇌’인 온보드컴퓨터(OBC)를 표면 탐사에 특화한 기술로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형 장애물을 쉽게 넘도록 우산처럼 펼쳐지는 ‘종이접기식 바퀴(에어리스 휠)’를 카이스트와 함께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로버를 소개해 달라.
2륜 로버 스캐럽(Scarab), 4륜 로버 해태(Haetae)와 안킬로(Ankylo)가 있다. 이 로버들에 카메라·센서·드론 등을 탑재해 고객사가 원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페이로드(payload)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스캐럽은 약 200~250g, 해태는 5~7kg, 안킬로는 10~15kg까지 탑재체를 싣고 맞춤형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지금은 지난해 11월 누리호 4차 발사 때 우주로 보낸 로버의 주요 부품이 잘 작동하는지 원격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우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테스트를 하고 있나?
누리호 4차에 탑재된 부탑재위성 코스믹(COSMIC)에 로버의 주요 부품인 OBC와 ESC를 탑재해 우주에서 잘 작동하는지 내구성을 테스트 중이다. ESC의 경우 저항 부하 요소들을 달아 전력을 보내면서 모터가 어느 정도까지 부하를 견디는지 확인하고 있다. OBC의 경우 별도 시나리오에 따른 신호에 맞춰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올 하반기 누리호 5차 발사 때 일부 사양을 업그레이드한 동일 부품을 보내 통신 분야 및 로봇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 등을 추가로 시험할 예정이다.
국내외 로버 분야 스타트업 현황은 어떤가?
아직 국내 스타트업은 없고, 현대차에서 100kg 이상의 탐사로버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로버의 부피가 커지면 시스템, 로켓 탑재비용 등 고려 사항도 늘어난다. 또 행성 착륙 지점의 기후 역시 주요 고려 대상이다. 결국 자본력 싸움인데 이런 상황에서 해외의 자금 투입 규모는 우리와 큰 차이가 난다. 일본의 투자 규모는 우리의 3배고 미국은 일본의 3배가 넘을 정도다. 미국 탐사로버기업 루나 아웃포스트가 달 착륙선 IM-2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받은 시드머니만 180억 원이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만든 우주스타트업 블루오리진은 탐사선부터 로버까지 밸류체인을 함께 키우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스타트업으로서 최선은 작은 무인탐사로버를 빠르게 먼저 보내 우주 헤리티지를 쌓아 스케일업하는 것이다.
해외는 어느 국가가 주도하고 있나.
아무래도 미국이다. 모든 분야를 총괄했던 NASA는 유인탐사 부문만 집중 관리하고 무인탐사 역할은 민간 영역으로 넘겨 구매자의 입장에서 산업을 진흥하고 있다. 민간이 워낙 잘하고 있고 NASA도 상용화된 기술개발은 산업에서 조달하며 임무 중심의 목표를 수립 중이다. 미국 LA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2~3번씩 팰컨9이 발사된다고 한다. 처음 발사할 땐 사람들도 신기해서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은 일상이 됐다는 거다. 한편 중국의 우주기술도 미국을 많이 따라왔다. 2024년 창어 6호를 달의 뒷면에 보내는 데 성공했고 2019년엔 달에서 로버를 굴리기도 했다. 달 탐사 로버는 보통 달의 낮 기간인 14일 동안만 운영되는데, 밤에는 기온이 영하 100도 이하로 떨어져 급속한 열 수축으로 인한 강한 열충격이 로버 작동을 멈춘다. 이에 중국은 100kg이 넘는 로버에 RTG 원자력 배터리를 탑재해 절전모드로 운영하며 충격을 버텨냈다.
우리나라는 당장 무엇이 필요할까?
미중 중심의 우주경쟁 시대에 아르테미스 협정국인 우리는 미국 중심의 우주산업에서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바로 로버를 통해 우주에 있는 데이터를 선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주로 가야 한다. 다른 국가들은 ‘로켓 발사→탐사선(lander) 착륙→로버 운영’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결국 우주 헤리티지를 쌓아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다. 우리도 국내 발사체로 진행하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등 어떤 로켓을 타든 거액의 발사체 탑재 비용을 내서라도 달에 먼저 가서 달 표면의 흙을 먼저 쥐어보는 거다. 글로벌 각국은 탐사에 성공한 로버를 이용할 것이고 그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가 우주데이터를 소유하면 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우주 자원에 대한 경제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것이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우선 기술 검증에 성공해 달에서 작동했다는 우주 헤리티지 타이틀을 얻는 게 목표다. 올해 누리호 5차 발사 때 시스템 테스트에 집중하고, 최소 내년 3분기부터는 탐사 가능한 로버를 탑재할 계획이다. 올 6월 NASA 상업용 달 탑재체서비스(CLPS Provider)에 등록된 탐사선과 우리 로버와의 기술 인터페이스 논의를 마치고, 내년엔 스캐럽을 달에 보낼 것이다. 2028년 1분기 일본 아이스페이스와도 협력해 로버를 보낼 계획이다. 2029년까지 사륜 로버들의 기술적 완성도를 올리고, 2032년 우리나라 달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우주개발에 기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