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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라이프 #키워드느리지만 단단하게 ‘K애니’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
임지영 칼럼니스트 2022년 11월호

 

어릴 때부터 만화가 좋았다.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서점에 가서 구독했다. 입시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밥벌이는 해야겠기에 고려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길이 아니었다. 공식을 풀어야 할 연필이 자꾸 만화를 그렸다. 머리가 시키는 일보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연봉 대기업을 마다하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됐다. 그리고 국내 순수 창작 애니메이션인 <기기괴괴 성형수>를 제작해 세계 10개국에 수출까지 했다. 조금은 수줍은 모습으로 과감하게 진격하는 ‘K애니’의 선두주자, 에스에스 애니먼트의 전병진 PD를 만났다.

만화와 사랑에 빠져 
애니메이터가 된 남자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전병진 PD는 늘 그 지점을 고민했다. 수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이 ‘잘하는 일’을 따른 것이었다면 졸업 후 만화 제작을 하겠다고 영세한 제작사를 기웃거린 건 ‘좋아하는 일’을 따른 결정이었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머릿속에 온통 만화밖에 없는데. 좋아하는 거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덤볐어요. 그야말로 겁을 상실한 청춘이었죠(웃음).”

졸업 전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에, 그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주관하던 6개월 워크숍을 신청했다. 수강과목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이었다.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시절, 그는 모조지를 대고 유명 작가의 만화를 열심히 모사했다. 그림 실력은 별반 늘지 않았지만 인맥은 두터워졌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과정이 끝난 후에도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며 업계 동향에 관한 정보를 나눴다.

그러다 그에게 구미가 당기는 일이 덜컥 들어왔다. 1997년 8월 29일 개최된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의 30초짜리 인트로 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뛸 듯이 기뻤던 그는 혼신을 다해 작업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그에게 새로운 행성이었다.

제작의 꿈을 안고 그는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열악한 제작환경과 설익은 시장환경에 대한 우려와 실망이었다. 사표를 쓴 그는 불모지에 던져졌다. 여건은 좋지 않았다. 마침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장 깊은 침체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처음의 패기도, 자신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운명이었다. 제작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그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을 찾았다. “다행히 공적자금으로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선발됐어요. 제작비부터 프로듀싱서비스, 홍보와 마케팅, 필요한 공간까지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능성을 확인한 <기기괴괴 성형수>,
‘K애니’의 시대를 열고파


만화 지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진흥원을 나왔다. 이제 진짜 자신의 도전을 할 차례였다. 당시 거센 한류 붐을 타고 퍼지기 시작한 드라마, 팝, 영화 등 K컬처는 더 이상 한국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중국시장을 겨냥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중국 소비자들이 ‘로맨틱 코미디’와 ‘공포 호러 괴담’을 선호한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그는 과감히 장르를 ‘공포 호러 괴담’으로 정했다. 그리고 관련 테마의 국내 만화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모래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당시 네이버 웹툰에서 상위권을 달리던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 성형수>를 캐냈다. 얼굴에 바르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기적의 ‘성형수’를 소재로 한 이 기묘하고도 괴기스러운 이야기는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신선했으며 선호하는 타깃층이 차별화돼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제작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막상 애니메이션을 완성해 선보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중국과 중화권 국가,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오세아니아 국가들과 베니스 영화제 같은 곳에서도 눈독을 들였다. 이처럼 해외시장의 뜨거운 반응 속에서 여러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으면서 한국 애니메이션도 해외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작은 성취가 쌓이면 큰 성공이 된다.

그는 요즘 새로운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은 K드라마지만, 언젠가는 K애니에 환호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어요. 물꼬를 잘 튼다면 애니메이션계의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성채처럼 높아 보이기만 했던 미국, 일본 등이 축조한 애니메이션 장벽. 전 PD는 글로벌 감각을 갖춘 크리에이터들, 바뀐 세상에 맞는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애니메이션 강국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믿는다. 때로 불가능은 가능의 위장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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