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미국 동부 명문대 MIT 교정. 앳된 얼굴의 한 학생이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된 그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처음 MIT에 진학할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가 되는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꿀지 고민하는 중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다섯 살 많은 선배가 어제 점심식사 자리에서 건넨 조언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게 꿈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너처럼 다재다능한 친구가 과학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돈을 많이 벌어보는 건 어때? 그렇게 번 돈으로 베풀면서 사는 거지!”
결국 고민하던 MIT 학생은 과학자의 길을 접고 번 돈을 모조리 자선사업에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금융업에 뛰어든다. 그는 과연 큰돈을 벌었을까? 또 초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기부에 나섰을까?
선한 의지보다 정교한 ‘엑셀 시트’를 믿는 사람들
점심 한 끼로 한 학생의 운명을 바꾼 철학도는 나중에 옥스퍼드대 교수가 된 윌리엄 맥어스킬이다. 얼핏 들으면 궤변처럼 들리는,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맥어스킬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 타인을 돕고 싶은, 이타주의로 가득한 청년이 있다. 그는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자 일찌감치 꿈을 의사로 정했다. 실제로 그는 열심히 공부해 의과 대학에 진학했고, 마침내 의사가 됐다. 사회로 나서려는 그의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의사 수가 턱없이 모자란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같이 돈벌이가 잘되는 개인 병원을 개원하는 일이다.
타인을 돕는 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타주의자 대다수는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에 소속돼 오지나 분쟁 지역으로 달려가는 의사가 그렇다. 맥어스킬은 바로 이런 접근에 딴죽을 건다. 물론 이 청년이 아프리카행을 택한다면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 덕분에 아프리카에는 훌륭한 의사가 한 명 더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서울의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번 돈의 절반 정도를 아프리카 질병 예방을 위해 기부한다면 어떨까? 맥어스킬의 계산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면 매년 4명, 즉 35년간 14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병원 의사로 일해서 연간 2억 원의 수익을 벌었다면, 35년간 70억 원이다.
이 소득의 절반인 총 35억 원을 매년 1억씩 35년간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활동에 기부한다면 어떨까. 말라리아 방지용 살충 처리 모기장을 배포하면 약 400만 원에 1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35억 원을 400만 원으로 나누면 875명, 그러니까 매년 25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번 돈을 기부하는 게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의사로 활동하는 것보다 6배(4명 대 25명)나 더 많은 생명을 구할 뿐만 아니라 나머지 1억 원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거나 또 다른 선한 목적에 쓸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나니 혹하지 않는가? MIT 대학생도 바로 이런 주장에 설득돼 자기 결심을 바꿨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선한 의지만으로는 부족하고 수학과 통계가 뒷받침된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주장. 이런 접근을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라고 부른다. 맥어스킬은 바로 이 효율적 이타주의 논리를 개발하고, 나아가 그 철학을 확산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지식인이다.
실제로 효율적 이타주의의 접근 방식은 가성비를 중시한다. 한 중소기업이 연말에 세금을 아끼고자 5천만 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한 재단이 이 소식을 듣고서 5천만 원을 시각장애인 안내견 한 마리를 훈련하는 데 기부하기를 권유했다. 분명 그 안내견 덕분에 시각장애인 한 사람의 삶의 질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질 테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이런 접근에 고개를 젓는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그 5천만 원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단다. 어느 가난한 나라에 세균 감염으로 결막에 염증이 생겨 시력을 잃을 수 있는 트라코마 환자들이 있다. 트라코마 환자 한 사람의 실명 예방 수술에는 약 5만 원이 든다. 5천만 원이면 가난한 나라의 트라코마 환자 1천 명의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기부도 꼼꼼히 계산하고 나서 진행한다. 아프리카의 5세 이하 아동을 돕는 단체가 있다. 그런데 회계 결산 보고서를 살폈더니, 기부금의 90퍼센트 이상이 아프리카가 아닌 한국에서 쓰였다. 직원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기부금 유치를 위한 연예인 섭외비 등.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이런 단체를 솎아내야 세상이 나아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만약 여기까지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다면, 실리콘밸리 마인드와 통한 셈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바로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와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챗GPT’를 세상에 내놓은 샘 올트먼이나 애초 올트먼과 함께했다가 갈라서서 또 다른 AI ‘클로드(Claude)’를 만든 다리오 아모데이 같은 이들이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열광적 신봉자다.
물론 효율적 이타주의가 주목받을수록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던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렇게 꼬집는다. “일상적인 행동(금융업)과 뼛속 깊이 품은 뜻(말라리아 박멸)의 간극이 넓어지다 보면 당신은 차츰 일상 속 당신의 모습을 닮아갈 테고, 초심과는 차츰 멀어질 것이다.”
선의로 포장된 사기극의 결말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초심을 잃지 않고 애초 품었던 선의를 지속할 수 있을지를 묻는 브룩스의 불편한 질문에 답하는 실제 사례가 있다. 맥어스킬의 설득에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고 금융업으로 뛰어든 바로 그 대학생이다. 그는 MIT를 졸업한 뒤 수학과 통계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차익 거래로 돈을 버는 퀀트 트레이딩 기업에 들어간다.
‘승률이 51%만 돼도 무한히 배팅하는’ 공격적인 투자로 돈을 번 그는 한국, 미국, 일본의 암호화폐 거래소 가격이 제각각인 점에 착안해 매일 여러 나라 거래소 사이에서 수천만 달러 규모의 매수·매도를 반복하며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급기야 이렇게 번 돈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만들기에 이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부도 많이 했다. 하지만 방향이 달라졌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인에게 수천만 달러씩 기부하며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그가 바로 2022년 11월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세운 억만장자 새뮤얼 뱅크먼–프리드다. 현재 그는 FTX의 고객 돈 80억 달러(약 11조 원)를 횡령한 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맥어스킬은 그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자 “내 철학의 오용에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고 언론에 불편한 심경을 밝혔다. 효율적 이타주의가 단지 괴물을 만나 왜곡됐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과연 그럴까. 비즈니스에서 효율은 미덕이지만, 도덕에서 효율은 때로는 독이 된다. 데이터가 생명을 구할 수는 있지만, 생명의 가치는 정의할 수 없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